서울 한남동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오늘 밤에는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나를 끌고 간 친구에게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뒤쪽은 늘 조용하고 고요하다. 대사관과 작은 사무실, 개인 주택과 일찍 문 닫는, 식사 위주의 식당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숨은 듯, 숨겨놓은 듯한 이 골목에 대나무로 건물을 두른 ‘속 깊은’ 바가 얼마 전에 생겼다. 속이 깊다고 표현한 것은 지하를 깊게 판 공간 때문이다. ‘푸시풋 살룬’.
이곳의 첫인상은 태국의 바를 방문한 듯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특별한 상호에 은밀한 분위기까지, 기존의 스피크이지(Speakeasy. 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한 술집) 바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처음엔. 하지만 아니었다. 유럽의 고급 라운지 바에 와 있는 듯한 금빛 인테리어, 지하지만 복층 구조로 된 바 테이블까지. ‘한남동 바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안일한 생각마저 사라졌다.
신나는 마음으로 바 안의 2층으로 올라가면 19세기 유럽의 기차 객실을 본뜬 테이블이 보인다. 각 테이블 옆에는 창문 모양의 장식이 설치돼 있는데, 기차 객실에 앉아있는 듯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림표를 정독했다. “이곳은 정통 레시피에 기반을 둔 클래식 칵테일이 정말 맛있다”는 친구의 훈수를 귓등으로 흘리고 바텐더에게 추천 메뉴를 물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취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 “진을 베이스로 하는 기본 마티니 대신 ‘돈 훌리오’ 테킬라를 넣은 ‘우키 마티니’가 인기 메뉴”라는 답이 돌아왔다. 데킬라 특유의 달콤하고 날카로운 향에 은은한 레몬 향까지 더해지니 정신이 아득했다. 쌉싸래한 뒷맛까지 경험하자 몽롱한 천국에 도착한 듯했다. 칵테일 일색인 다른 바와 달리 이곳에서는 샴페인, 레드와인, 셰리와인까지 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들고만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 얼기설기 얽힌 인간관계 때문에 훌쩍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기분만이라도 내야 한다.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