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특유의 진득한 젓갈 맛과 짭조름한 감칠맛을 좋아하는 입맛을 가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재 입맛’이라는 놀림을 당하는 건 당연하다. 이 때문이었을까? 아저씨들의 '잇(IT) 플레이스'이자 성지인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끼어 있는 ‘전주집’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뻤다. 을지로 전주집은 외관부터 보통이 아니다. 한자로 쓴 그 옛날 진로 소주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빛바랜 간판, 네온사인으로 불을 밝힌 ‘전주집’ 상호와 벽돌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 ‘파사드(건물 외벽)’까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냉동 삼겹살’ 전문점의 원천이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왔다.
비슷한 디자인의 양복을 걸쳐 입은 을지로 인근 직장인들부터 성성한 백발의 할아버지들, 앳된 표정의 젊은 커플까지. 이곳을 찾는 손님의 나이는 넓고도 다양하다. 저녁 6시 직장인의 퇴근 시간보다도 이른 시간에 방문했는데도 10여분 대기 시간을 거쳐 입장할 수 있었다. ‘진짜 맛집이 맞는구나’ 확신이 들었다.
자리에 앉으면 당연하다는 듯, 데친 콩나물 더미, 새송이버섯, 부추 무침과 파절이, 김치, 쌈 채소가 놓인다. 테이블마다 놓인 버너에는 무쇠 불판이 올라가 있다. 그저 그래 보이는 반찬일 수도 있는 상차림에서 눈길을 끄는 건 파절이다.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무친 파절이 위에 올라간 동그란 달걀노른자가 해가 뜬 듯 식탁을 환하게 밝힌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냉동 ‘목 삼겹살’이다. 기름과 살코기가 절반씩 섞인 조화로운 ‘목 삼겹살’은 주문하면 주인인 그때야 썬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는 불판 위에서 빛을 발한다. 고기를 올리고 10까지 숫자를 센 뒤 뒤집는다. 적당히 익은 고기는 그냥도 먹고 스끼야끼(일본식 고기구이 요리)를 먹듯 노른자에도 푹 찍어 파절이와 함께 입에 넣기도 한다. 고소하고 새콤하다. 데친 콩나물, 부추 무침, 새송이버섯을 함께 넣고 볶듯이 구우면 돼지고기의 고소한 기름이 이 모든 재료에 스민다. 정신없이 고기를 굽고 마시고 나서, 마무리는 역시 탄수화물과 국물이다. 남은 기름과 재료에 고추장 양념과 밥을 섞어 볶는다. 일품이다. ‘이걸 먹기 위해 고기를 구워 먹었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구수한 된장찌개를 곁들이면 정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상호에 ‘전주’가 들어가는 식당치고 음식 맛에 자신 없는 집이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손맛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라도, 그리고 음식 문화의 성지로 추앙받는 전주를 내세운 곳이야말로 제대로 된 맛집 보증수표일 거라, 감히 자신한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