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사이에서 지금 제일 ‘핫’한 동네라면 단연 서울 을지로 일대가 아닐까? 본래 시작은 을지로 ‘노가리 축제’였다. ‘한국판 옥토버페스트’, ‘아재들의 록 페스티벌’이라고 불리는 노가리 축제는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맥주 판매량을 올리고 있다고 알려진 노가리 골목에서 매 여름 대대적으로 열린다. 이틀 간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노가리 1000원, 500cc 맥주 1000원이라는 기적 같은 가격으로 마음껏 취할 수 있다. 노가리에 맥주를 한껏 마시고 취기가 오르니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추천할 곳 없느냐’는 내 성화에 일행 중 가장 젊은, 20대 청년이 자신만만하게 “세운상가로 가자”고 외쳤다.
내가 알던 그 세운상가를 말하는 건가? 그 낡고 후미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 건물에 뭐가 있다는 거지? “또 아재 술집을 가자는 소리냐”는 일행들의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취기를 친구 삼아 천천히 걷었다. ‘재료만 있으면 탱크와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만큼 전자, 전기 산업의 메카였던 곳이 세운상가다. ‘고무 박킹’, ‘철물’, ‘’휴즈 백화점’ 등 얼핏 흘려 보면 무슨 말인지 해석조차 힘든 건설 특수 용어가 적힌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나무 난간을 지나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놀라운 공간이 펼쳐진다. 전자, 전기 장비를 판매하는 오래된 공구 가게 사이로 커피숍, 바 등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젊은 가게들이 보인다. 방금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앞뒤 상하좌우를 살피며 걷다 흰 외관, 빨간 조명의 ‘포언더바’를 발견했다. 낮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로, 저녁부터는 본격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바로 운영하는 곳이다. 매장 바깥까지 새어 나오는 선정적인 빨간 조명과 쿵쿵거리는 라운지 음악이 합쳐져 클럽에 온 듯하다. 각종 위스키부터 와인, 크래프트 맥주(수제맥주)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를 위한 논 알코올음료까지 갖췄다. 해가 떨어진 선선한 저녁에 테라스에 앉아 맥주와 와인을 골고루 시켰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한 아기자기한 식기와 잔에서 이곳만의 센스가 돋보였다.
술을 마시면서 이곳에 속해 있자니 이 상가를 부유하듯 걷는 젊은이들의 행색이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듯한 오래된, 속칭 말하는 ‘빈티지’ 카메라를 제각기 목에 걸고 관광지를 걷듯 순회하는 ‘요즘 힙스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는 묘한 우월감은 대체 뭘까?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