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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난 세운상가에 마시러 간다

등록 2018-06-28 10:36수정 2018-06-28 13:44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세운상가의 ’포언더바’. 백문영 제공
세운상가의 ’포언더바’. 백문영 제공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금 제일 ‘핫’한 동네라면 단연 서울 을지로 일대가 아닐까? 본래 시작은 을지로 ‘노가리 축제’였다. ‘한국판 옥토버페스트’, ‘아재들의 록 페스티벌’이라고 불리는 노가리 축제는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맥주 판매량을 올리고 있다고 알려진 노가리 골목에서 매 여름 대대적으로 열린다. 이틀 간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노가리 1000원, 500cc 맥주 1000원이라는 기적 같은 가격으로 마음껏 취할 수 있다. 노가리에 맥주를 한껏 마시고 취기가 오르니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추천할 곳 없느냐’는 내 성화에 일행 중 가장 젊은, 20대 청년이 자신만만하게 “세운상가로 가자”고 외쳤다.

내가 알던 그 세운상가를 말하는 건가? 그 낡고 후미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 건물에 뭐가 있다는 거지? “또 아재 술집을 가자는 소리냐”는 일행들의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취기를 친구 삼아 천천히 걷었다. ‘재료만 있으면 탱크와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만큼 전자, 전기 산업의 메카였던 곳이 세운상가다. ‘고무 박킹’, ‘철물’, ‘’휴즈 백화점’ 등 얼핏 흘려 보면 무슨 말인지 해석조차 힘든 건설 특수 용어가 적힌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나무 난간을 지나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놀라운 공간이 펼쳐진다. 전자, 전기 장비를 판매하는 오래된 공구 가게 사이로 커피숍, 바 등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젊은 가게들이 보인다. 방금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앞뒤 상하좌우를 살피며 걷다 흰 외관, 빨간 조명의 ‘포언더바’를 발견했다. 낮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로, 저녁부터는 본격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바로 운영하는 곳이다. 매장 바깥까지 새어 나오는 선정적인 빨간 조명과 쿵쿵거리는 라운지 음악이 합쳐져 클럽에 온 듯하다. 각종 위스키부터 와인, 크래프트 맥주(수제맥주)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를 위한 논 알코올음료까지 갖췄다. 해가 떨어진 선선한 저녁에 테라스에 앉아 맥주와 와인을 골고루 시켰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한 아기자기한 식기와 잔에서 이곳만의 센스가 돋보였다.

술을 마시면서 이곳에 속해 있자니 이 상가를 부유하듯 걷는 젊은이들의 행색이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듯한 오래된, 속칭 말하는 ‘빈티지’ 카메라를 제각기 목에 걸고 관광지를 걷듯 순회하는 ‘요즘 힙스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는 묘한 우월감은 대체 뭘까?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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