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힘든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생방송 중 “왜 내 순서가 맨 뒤냐”며 갑자기 집에 가겠다는 출연자를 달래거나, 녹화 두 시간 전 연락 두절된 출연자를 찾아내 방송사 승합차에 태워(라고 쓰고 ‘잡아’라고 읽는다) 오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는 24시간 만에 한 시간짜리 추모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보내느라 하루 만에 몸무게가 3kg이 빠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건 일도 아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범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피해자의 시신 사진을 봐야 하는 때다. 프로파일러와 법의학자에게 사건 분석과 자문을 의뢰해야 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가능한 한 보는 횟수를 줄일 수는 있어도, 한 번도 안 볼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지금부터 얘기할 ‘인제 광치령 사건’은 특히 떠올리기 괴로운데. 그런데도 쓰는 이유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제보나 신고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2003년 4월18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던 김현동(가명)씨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맡은 일은 광치령 고갯길의 가드레일을 보수하는 것. 동료 두 명과 함께 광치령에 도착한 김현동씨는 얼마 뒤 도로변에서 커다란 포대 셋을 발견했다. 본업이 고물상이었던 그는 근처 농가에서 내놓은 고철 폐기물일 거로 생각하곤 기대에 차 포대에 손을 댔다. 그런데 그 순간 물컹물컹한 감촉에 멈칫했다. 간혹 ‘로드 킬’ 당한 동물 사체를 그렇게 버리는 일이 있기에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어딘가 미심쩍어 슬쩍 풀어본 순간 경악했다. 그 속에서 사람의 다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인제경찰서에선 강원지방경찰청의 베테랑 형사들과 광역수사대, 기동수사대 등 50명이 짐을 싸고 있었다. 6개월 전 꾸려졌던 ‘20대 여성 살해사건’의 수사본부가 해체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마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즐거워하며 박스 속에 짐을 챙겨 넣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광치령에서 포대에 담긴 시신을 발견했다는 신고 전화였다. 그들은 짐을 싸던 손을 멈추고 일제히 출동했다.
얼마 뒤 편도 1차선의 좁은 국도엔 수십 대의 경찰 차량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포대가 열리는 순간 형사들은 낮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잔혹하게 훼손된 성인 남성의 토막 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체하려던 수사본부는 즉시 다시 설치됐다.
그런데 시신을 검안하자 더 기가 막힌 사실이 알려졌다. 발견된 포대 셋 어디에도 머리와 손이 없었다. 경찰은 사라진 머리와 손을 찾아 시신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머리와 손에 있는 치아 정보와 지문을 알 방법이 없으니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발견된 시신의 피부가 지나치게 희므로 외국인일지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건 훼손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라고 법의학자들은 분석했다. 또 치아 정보와 지문을 없앴다는 건 피해자가 우리나라 사람인 게 거의 확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경찰은 물론 프로파일러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었다.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 가장 먼저 용의자로 지목받을 인물이 범인’이라는 점이었다.
범인은 고사하고 피해자가 누군지 조차 알 수 없으니 시작부터 수사는 난항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우선 시신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모으기 시작했다. 신장은 160cm가량이었다. 여기에 성인 남성의 평균 머리 길이를 더하면 대략 185cm 정도의 키였을 것으로 짐작됐다. 몸무게는 68kg이었는데, 여기에 보통 성인 남성의 머리와 양쪽 팔 무게를 더하면 80kg에서 90kg가량의 몸무게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검결과 시신에선 모두 21곳의 찔린 자국이 발견됐다. 이게 의미하는 건 뭘까. 프로파일러와 법의학자들 모두 전형적인 ‘오버 킬’(overkill·과잉살해)이라고 판단했다.
사건 당시 부검의였던 조선대 의대 법의학교실 김윤신 교수는 “어느 순간에 이미 사망했을 텐데도 계속 가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원한이나 분노가 범행 동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가해자가 흉강의 갈비뼈까지 훼손한 점에 주목하며 “가해자는 아마 굉장히 빠른 속도로 분노에 차 공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피해자는 완력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를 어떻게 제압할 수 있었을까. 혹시 마취제나 약품을 썼던 걸까. 하지만 부검 결과 시신에서는 마취제를 비롯한 어떤 약물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고, 혈중알코올농도 또한 0.05% 즉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전북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호 교수는 “피해자가 손이 묶이거나 해서 제압된 상태였던 것”으로 분석했다. 시신에서 시반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선 범인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 시행했을 거란 추정이 가능했다. 유성호 교수는 “시반이란 사망 후 서너 시간 이후부터 혈액이 바닥 쪽으로 가라앉으며 피부에 나타나는 반점을 말하는데, 시반이 안 보인다는 건 그 서너 시간이 지나기 전에 시신을 훼손했다는 뜻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즉 이 사건은 피해자에게 극도의 원한과 분노를 품은 범인이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지능적이고도 잔혹한 범죄였다.
경찰은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집요한 수색과 탐문을 이어가는 동시에 2003년 당시 신고가 된 전국의 실종자 2만5천명 가족에게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우편 발송했다. 초동 수사를 담당했던 인제경찰서 장영철 형사는 우푯값이 200원에서 300원 하던 시절이었는데도 우편물 발송비용만 5백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경리과에서 조사까지 나와 경위서를 써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회신은 불과 3건. 그나마도 유전자 분석 결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아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시신을 훼손한 상태나 도구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을까. 강원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이 2016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재분석을 의뢰한 결과 시신 훼손에 쓰인 도구가 ‘체인소’라는 회신을 받았다.
가천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정빈 석좌교수는 범인이 시신을 훼손한 방법이 상당히 독특하다고 했다. 범인은 관절이 아닌 뼈 부분을 절단했기 때문이란 것. 따라서 이정빈 교수는 범인이 체인소를 쓰는 데 상당히 자신 있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범죄심리학자인 경기대 이수정 교수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범인이 해부학적 지식을 가진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살해 방법, 훼손 방법, 유기 방법을 보면 범죄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가진 자의 계획적 살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강창권 경장도 훼손된 시신에서 또 다른 특이점을 발견했다. 벌목된 나무 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러진 부분이 시신의 뼈에서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형태는 체인소로 능숙하게 벌목을 해봤던 사람의 평소 습관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프로파일러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시신을 유기한 방법과 장소에서도 범인의 의도를 읽어볼 수 있다고 했다. 시신 유기지점인 광치령 인근은 해발 800m 이상의 깊은 숲속.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시신이 발견되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도 도로변에 포대를 그냥 던지듯 유기했다는 것이다. 표 의원은 “신원은 감췄지만, 나머지 시신은 발견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정했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이 사건을 완전히 미궁에 빠뜨리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도로변에 유기하기보단 근처 깊은 산에 묻는 쪽을 택했을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부위는 어디에 있을까. 표창원 의원은 ‘깊이 매장했거나, 물속에 가라앉혔거나, 소각했을 수 있다’라고 봤다.
2015년 8월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2000년 8월1일 이후 발생한 살인 사건들의 공소 시효가 사라졌다. 여기에 힘입어 강원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에선 지난해에만 두 건의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했고, 지금도 남은 미제사건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인제 광치령 사건은 그중 가장 힘든 사건이다. 그럼에도 강원청 미제팀에선 추가되는 실종자 데이터와 피해자의 유전자를 수시로 대조하고 있으며 새로운 단서를 찾아 추적 중이다.
※ 2003년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광치령 시신 사건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 그리고 2003년 4월 이후 실종된 가족(남성)이 있는 분은 강원지방경찰청 강력계 미제사건전담팀(033-241-4599)으로 제보해주세요.
글 조수진(방송작가), 그래픽 이경희 기자 modaki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