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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문이 굳게 잠긴 모텔 101호의 비밀은? - 부산 버킹검 모텔 사건

등록 2018-12-26 19:39수정 2018-12-26 22:14

조수진의 미제사건 노트

2010년 10월1일은 ‘국군의 날’이자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김영환씨(가명·당시 56살)는 아침 10시45분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의 ‘버킹검 모텔’에 출근했다. 그런데 항상 모텔 정문을 들어서면 카운터를 지키며 맞아주던 모텔 사장 이지원씨(가명·당시 46살)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거나 잠시 다른 볼일이 있나 보다 생각한 김영환씨는 무심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불이며 휴지, 수건 등 모텔 비품을 쌓아두고 창고로 쓰던 101호의 문이 굳게 잠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영환씨가 버킹검모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잠긴 적이 없던 문이었다.

모텔 사장 이지원씨를 한동안 기다려봤지만,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자 김영환씨는 열쇠 수리공을 불러 잠긴 101호의 문을 열었다. 방안은 비교적 말끔했지만, 쌓아둔 이불과 수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영환씨는 매우 놀라고 말았다. 모텔 사장 이지원씨가 이불에 덮인 채 숨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발견된 시신은 몹시 참혹했다. 출동한 경찰들조차 말문이 막혔을 정도로 온몸에 흉기에 찔린 자국이 가득했다. 부검 결과 시신에서 발견된 찔린 자국은 모두 74곳. ‘오버 킬’(over kill,·과잉 공격) 중에서도 드물게 보는 ‘오버 킬’이었다.

8년 전 한 모델 방에서 시신 발견
평판 좋은 주인으로 밝혀져

시신에서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흉기를 막다가 생긴 상처가 없지는 않았지만, 저항의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공격당한 거로 보인다는 것. 게다가 모텔에 있던 현금 30만원이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발견된 점으로 보아 경찰은 원한에 의한 범행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지원씨 주변을 아무리 조사해도 특별히 원한을 살만한 일도 그럴만한 인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살았던 지원씨는 숨지기 몇 달 전에야 부산에 와 부친과 함께 모텔을 운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건 발생 한 달 전쯤 부친이 세상을 뜨자 속히 모텔을 정리하고 영어학원을 운영하려 했던 사실도 알아낼 수 있었다.

경찰은 모텔 1층에 설치돼있던 시시티브이(CCTV) 기록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시신이 모텔 안에서 발견됐으니, 범인은 모텔 안으로 들어왔던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시시티브이를 피하긴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시티브이 기록 분석을 시작하자마자 독특한 점이 발견됐다. 같은 얼굴이 반복해서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지원씨가 운영하던 모텔은 주로 장기 투숙객들이 이용하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원씨의 모텔은 흔히 ‘서면’이라 불리는 번화가에 있었기에 근처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원룸처럼 이용하던 곳이었다. 그 때문에 하루 이틀 머무는 단기 숙박객은 객실 대여섯 곳에서만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군가가 원한을 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에겐 모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별다른 혐의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어 시신이 발견된 101호 옆 객실에 투숙했던 커플도 조사했다. 한 사람이 74번이나 흉기에 찔렸다면, 그동안 옆방에서 수상한 소리나 인기척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시신 발견 현장도 세심히 조사했다. 그리고 담배꽁초 하나를 발견했지만, 감식 결과 꽁초는 아주 오래전의 것이었고. 유전자를 발견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나 101호에 가득했던 수건 중 하나에서 성인 남성의 유전자를 채취하는 데는 성공했다.

경찰은 즉시 시시티브이 속에서 발견된 인물들과 이지원씨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유전자 대조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뒤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인물을 찾았다. 그는 모텔 근처 만물상 사장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출장 수리하는 이였다. 게다가 사건 발생 며칠 전 해당 모텔에 와서 이것저것 수리를 했던 사실도 알려졌다. 경찰은 그를 긴급체포했다.

잔혹한 주검으로 미뤄 원한 추정
시시티브이 조사했으나 용의자 없어

만물상 사장은 펄쩍 뛰며 강하게 부인했다. 출장 수리 의뢰를 받고 와서 일하다 보니 몸이 더러워지고 땀에 젖어 101호 욕실에서 샤워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잘못이라면 수건을 따로 내놓지 않고 방치한 것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아무리 그곳이 모텔이었다 해도 집이 아닌 출장지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경찰은 만물상 주인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진실’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또 그가 내놓은 알리바이도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경찰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건 전날부터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모텔 1층 시시티브이에 잡힌 모든 출입자를 확인했다. 조사해야 하는 대상이 200명에 육박했지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적을 낱낱이 확인했다. 녹화된 영상의 해상도가 좋지 않아 분석이 쉽지 않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혐의점이 있는 인물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시티브이에 잡힌 거의 모든 인물을 조사할 때까지도 정체를 밝히지 못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남색 혹은 검은색에 흰색이 섞인 점퍼와 검은 바지를 입은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성이었다. 그러나 영상 속 어디에도 그의 얼굴은 잡히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녹화된 장면이 너무 짧았다. 모텔을 빠져나간 그가 모텔 앞 골목길을 걸어 사라지는 모습이 전부였다. 경찰은 즉시 그가 걸어간 골목길에 있는 모든 시시티브이를 조사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시시티브이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그가 찍힌 영상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모텔에 설치된 시시티브이의 위치를 미리 알고 교묘하게 피했던 걸까? 그랬건 아니건 그가 모텔에서 걸어 나가는 모습이 명확히 찍힌 만큼 반드시 그의 신원을 확보해야만 했다.

경찰은 모텔 직원과 장기 투숙객은 물론 단기 투숙객과 모텔 주변 상인 등을 대상으로 영상 속 남성을 알거나 본 적 있는 이를 수소문했지만, 그를 안다는 이는 나서지 않았다. 그 남성이 골목길을 벗어나 이동했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예상 경로를 설정해 조사했지만, 그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지원씨는 미혼이었고 주변 인간관계도 깔끔했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미움을 받은 적 없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무려 74곳이나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범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발견할 수 있었던 현금 30만원은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건 현장을 드나든 거의 모든 인물을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제 얼굴 없는 단 한 명의 시시티브이 영상만 남아있다. 이렇게 사건을 요약해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단 한 남자만 신원 확인 안 돼
아직 조사 중인 그 남자, 범인일까

사실 이 사건을 취재하면 할수록 많이 듣게 됐던 말은 바로 “못 잡겠는데”였다. 그동안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나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 사건을 다루려고 했던 적은 3번이나 있다. 그러나 매번 포기했다. 단서가 너무 없어서 1시간짜리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긴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할 때마다 이지원씨에게 미안했다. 살아서는 일면식도 없다가 세상을 뜬 뒤에야 알게 된 분이지만, 한마디로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번 작은 약속을 했었다. 지금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릴 수는 없지만,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우리에겐 흐릿한 시시티브이 영상 속에 담긴 한 남성의 모습이 있다. 그가 이지원씨를 해친 범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의 신원을 확보해 그가 범인이 아니란 사실이라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이 사건은 해결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조수진(방송작가)

※ 2010년 10월1일 발생한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버킹검모텔 사건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은 부산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051-899-2770)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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