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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왜 털 난 사람이 털 난 사람을 보고 놀랄까?

등록 2018-08-15 20:57수정 2018-08-15 21:22

러브 레시피너 어디까지 해봤어?
사진가 벤 호퍼의 ‘내추럴 뷰티’ 프로젝트 사진. 사진 벤 호퍼 누리집 갈무리
사진가 벤 호퍼의 ‘내추럴 뷰티’ 프로젝트 사진. 사진 벤 호퍼 누리집 갈무리
‘자기관리’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옛 사람들이 말하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자기관리’ 아닐까? 자기 몸에서 시작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까지 나아가는, 사적인 나와 공적인 나를 다스리기.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요즘 자주 듣는 ‘탈코’(탈코르셋)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다. 코르셋을 일상생활에 입지 않는 시대에 코르셋을 벗는다는 움직임은 무엇일까. 여성이 벗고자 하는 코르셋은 무엇이었나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성이 외모를 꾸미는 거의 모든 단계는 ‘관리’라는 말로 설명된다. 환갑을 앞둔 여성 배우가 딸 역할인 배우와 자매처럼 보이면 자기관리를 잘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은 뒤 임신 전 몸매로 금방 돌아오면, 자기관리를 잘한다고 한다. 네일숍부터 스파까지 미용을 위한 모든 코스는 ‘관리’라고 부른다. 여성은 일을 하는 자리에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나서면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화장을 하지 않은 남성의 얼굴은 얼굴이지만,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의 얼굴은 ‘노메이크업’ ‘쌩얼’로 불린다. 화장을 잘해 원래 얼굴과 달라질수록 ‘쌩얼’이 유머의 소재가 되니, ‘쌩얼’도 관리를 해야 한다. 여자는 꾸밈을 한 상태가 기본이다. 브래지어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원래’ 브래지어를 해야 하므로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여자의 가슴은 ‘노브라’라고 불린다. 모든 인간은 ‘노브라’로 태어나지만 ‘여자’는 모두 브래지어를 한다.

영화 <러브픽션>의 주인공은 완벽한 줄 알았던 희진(공효진)과 사랑에 빠진 주월(하정우)이 주인공이다. 주월은 희진을 만날수록 환상이 깨진다. 희진의 ‘괴상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둘이 섹스하려고 옷을 벗다가 희진의 겨드랑이 털을 주월이 보게 되는 설정이다. 겨드랑이에 털난 사람이 겨드랑이에 털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명장면은 그렇게 탄생한다. 여자가 밀어야 하는 털은 겨드랑이털만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모든 것을 손봐야 한다. 눈썹털을 가지런히, 머리카락도 수시로 다듬고 펌을 하고 샴푸 뒤 말릴 때는 제품을 발라가며 너무 거칠지 않게, 겨드랑이, 허벅지, 발가락 위에도 털이 있으면 ‘민망’하다. 남성들은 대화할 때마다 시선을 강탈하는 콧털조차 부모님께 물려받은 그대로 삐죽이 튀어나온 대로 존중하는데, 여성들은 ‘관리’하느라 모든 것을 개조한다. 가수 홍진영씨가 술을 마시고도 얼굴색이 안 변하는 장면이 TV에 노출되자, ‘홍진영 파운데이션’이 검색어에 올랐다. 남성들 얼굴이 아무리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도 파운데이션을 떠올리지조차 않지만.

게다가 이 모든 관리에는 엄청난 비용과 고통이 든다. 여자 초등학생부터 용돈을 꾸밈비에 쓴다. 여성은 소득에 따라 점점 고가의 화장품 라인으로 ‘갈아타며’ 피부관리를 하고, 피부과에 간다. 피부과 시술로 가면 웬만한 월급만큼의 돈에 두어달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심지어 아프기까지 하다. 몸매 관리든 피부 관리든 효과와 더불어 논해지는 통증의 기준 중 하나는 출산이다. “애를 낳아봐서 그런지 저는 견딜 만 했어요.” 다이어트는 더 심각하다. 아프고 나서 체중이 줄면 ‘자연 다이어트’라고 한다. 여성에게는 ‘미용체중’이 따로 있다. 건강체중보다 한참 미달하는 이 ‘미용체중’은, 사실 키와 무관하게 48킬로그램 정도로 고정되어 있을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탈코’에 대한 논의는 ‘그 돈’, ‘그 시간’, ‘그 노력’을 들여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며, 오로지 외모와 관련된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자존감을 깎아먹지 말고 ‘성취’에 집중하자는 담론이다. 평천하. 나라를 다스릴 힘을 갖는 데 집중해도 부족할 에너지를 꾸밈에 쓰기는 아깝지 아니한가. 여성의 꾸밈은 진학, 취업, 연애, 결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왜 여성만 꾸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나.

처음 시작은 색조화장품 버리기였다. 그리고 원래의 얼굴색을 바꾸는 피부화장을 그만둔다. 안 그래도 더운 여름날이니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본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손질 단계를 최소화한다. 굳이 새 옷을 사지 않는다. 이렇게 바꾸면 돈이 굳는다. 그 돈으로 저축하고, 돈이 모이면 재테크도 해보자. 그 시간에 학원을 다녀 자격증을 따자. 왜 남자같이 되려고 하느냐고? 글쎄, 인간답게 살고자 할 뿐이다.

이다혜(작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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