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에 빠진 나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소중한 한 끼를 거르고 싶지 않을 때 가는 곳이 마포구 합정동의 ‘무대륙’이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에 위치한 이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요즘 같은 날씨에 낡은 주택가 골목에 은둔하듯 숨어있는 이곳을 걸어서 찾아가려면 땀을 한 바가지 흘리게 된다. 그럼에도 무대륙을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이곳만의 특유의 매력 때문이다. 서울 합정동과 상수동, 홍대 입구역 인근은 예부터 남다른 취향을 가진 젊은이와 예술가로 북적였다. 서울 이태원동의 경리단길, 성수동 서울숲 일대, 익선동과 한남동이 대표적인 ‘힙’한 동네로 뜨기 전에는 상수동과 합정동이야말로 문화의 중심이자 유행의 최전선이었다. 한껏 오른 임대료 때문일까? 지금 상수동과 합정동은 과거 정취가 희미해졌다. 무대륙은 그 옛날의 ‘홍대 감성’ 그대로인 몇 안 되는 보석 같은 곳이다.
표면이 거친 시멘트벽과 키 큰 녹색 식물 등이 반기는 이곳은 레스토랑인지 카페인지 딱 꼬집어 정의하기 힘들다. 더구나 공연하는 작은 무대까지 합치면 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생경한 감정이 앞선다. 신대륙에 막 입성한 콜럼버스의 심경이 이랬을까? 보통의 레스토랑과 달리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무척 넓다. 다른 이의 대화도 들리지 않고, 내 얘기가 행여 옆자리까지 들릴까 하는 걱정도 할 필요 없어 좋다.
커피, 각종 식사, 와인과 맥주까지 두루두루 갖춘 데다 국산 생맥주를 파는 점도 마음에 든다. 며칠 전 무대륙을 찾아간 날도 30도가 넘었다. 이마에 흐른 땀을 연신 닦으며 일단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맥주 한 잔이 들어가니 허기가 졌다. 각종 파스타와 볶음밥, 바게트 샌드위치까지 고루 갖춘 구색이 반가웠다. ‘김치 베이컨 볶음밥’과 ‘포크 샌드위치’, 파스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대표 메뉴인 듯 보이는 ‘할라피뇨 오일파스타’를 주문했다. 잘게 다진 매콤한 할라피뇨(고추 품종 중의 하나로 매운맛이 특징)와 마늘을 함께 볶아 만든 파스타에 긴 오이 피클 한 조각을 얹은 모양새가 먹음직스러웠다. 파스타 면을 둘둘 말아 입안 가득 밀어 넣고 접시 바닥에 깔린 할라피뇨 조각을 긁어먹었다. 짜고 기름지면서도 매콤한 감칠맛 덕에 오일파스타 특유의 느끼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식사용 안주가 있으니 맥주도 술술 들어갔다. 생맥주 한 잔을 더 주문하고 파스타 한입에 자른 피클 한 조각으로 입가심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 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먹고 마시는 것조차 결정하기 힘든 날, 그런 날에는 잠시 도망가도 괜찮다. 새로운 대륙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새로운 선택이 우리를 기다린다.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