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신코’의 ‘소라 고추냉이’. 사진 백문영 제공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는 남산 자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언덕길로 이뤄진 동네다. 흔히들 ‘해방촌’이라고 하면 으레 그곳인 줄 아는, 묘한 분위기의 동네다. 부쩍 짧아진 낮. 해가 슬금슬금 떨어지는 오후, 나른한 기분으로 해방촌 쪽으로 발을 돌린다. 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큼 쓸쓸하고 환상적인 일이 또 있을까? 늘 귀찮다는 핑계로 해방촌의 들머리만을 왔다 갔다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남산 타워가 점점 커질수록 이 언덕길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방촌 오거리는 후암동과 한강로, 소월길까지 남산을 중심으로 자라난 모든 동네가 맞붙어있는 장소이자 다시 여러 갈래의 길로 나뉘는 곳이다. 남산 자락만 바라보고 걸으면 어디든지 닿을 수 있는 중심지다. 여러 동네의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모이는 이 자리에는 작고 귀여운 캐주얼 식당과 카페가 참 많다.
와인 바, 한식 주점 등 각종 맛집이 즐비하게 늘어난 골목을 뒤로하고, 조용히 혼자 마실 곳을 찾다 발견한 곳이 ‘신코’다. 불투명한 유리창 사이로 비치는 불빛, 일본의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듯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모양새가 따뜻하다. 10석 규모나 될까? 생각보다 작은 매장의 크기가 놀라던 찰나, ‘모든 테이블은 다찌(바 테이블)로 이뤄져 있다’는 소리에 ‘혼자 앉아도 될까’ 하는 고민이 문득 들었다. ‘혼술 손님을 환영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는 소심한 기분은 무엇일까? 구석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폈다. ‘돈지루’, ‘나폴리탄 스파게티’, ‘야키소바’, ‘함바그’ 등 소박한 일식 메뉴가 한가득이다. 한국 소주는 물론 일본 아와모리(일본 오키나와현에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와 하이볼, 오키나와 생맥주까지 갖춰놓은 곳이다.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소라 고추냉이’를 먼저 주문하고 차가운 하이볼을 한 모금 넘긴다. 납작하게 자른 소라를 매콤한 고추냉이에 버무린 안주다. 깔끔하고 청량한 맛이 일품이다. 아삭하고 고소한, 삶은 풋콩을 접시 밑에 가득 깔고 소라를 듬뿍 얹었다. 마치 생일 케이크를 받은 것 같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해는 완전히 저물고, 어두워진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어졌다. 왁자지껄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이 적당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오늘도 여유롭게 취한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