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무한리필 샤브 뷔페’의 마라탕. 사진 백문영 제공
특정 음식에 ‘꽂힐 때’가 있다. 최근에는 마라탕이다. 입맛이라는 것이 간사하다더니, 찬바람이 코끝에 닿기도 전에 맵고 자극적이고 뜨거운 음식이 그리워졌다. 그것의 첫인상은 충격적이고 공포였다. 용암같이 펄펄 끓는 빨간 국물 위를 가득 덮은 화자오(중국 매운 향신료 중 하나)를 보고, ‘이걸 과연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음식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큰하게 취한 밤이었다. ‘뭐가 어찌 됐건 해장을 해야 한다. 무조건 먹자’ 생각하고 국물을 한술 떴을 때, 이미 나는 마라탕에 중독될 운명이었다.
중국에서는 일상적으로 먹는 마라탕이라지만, 이 음식을 제대로 하는 전문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하철 건대입구역 근처나 대림동처럼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가야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서교동 홍대 맛 골목이나 압구정동 같은 번화가에도 마라탕을 파는 체인점이 속속 생기는 추세다. 하지만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체인점의 맛은 뭔가 빠진 듯 살짝 아쉬웠다. 주머니 가벼운 프리랜서의 월급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도 어쩐지 좀 서운했다.
나와 마라탕이 다시 좋은 사이로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전문점을 찾아내야 했다. 주변의 제보나 검색을 통한 수소문에는 한계가 있었다. 운명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 매운 족발을 먹자는 친구의 말에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에서 내렸다. 종로구 창신동은 소규모 의류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식당으로 가는 자그마한 골목에서 수상한 간판을 발견했다. ‘형제 무한리필 샤브 뷔페’라 쓰여 있는 수상한 간판에는 한글보다 중국어가 더 많았다. 무한 리필이라는 말만큼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얼핏 들여다본 가게 안은 뜨거운 국물이 뿜어내는 김과 사람으로 가득했다. 홀린 듯이 입장해 주변을 살폈다. 알배추, 청경채, 숙주, 콩나물 등 다양한 채소부터 중국 당면, 옥수수 면, 칼국수 면과 같은 면류, 동두부, 건두부, 각종 버섯과 메추리알, 소시지 등 온갖 식재료가 카운터 옆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곳은 천국인가’ 황홀한 마음으로 채소와 두부, 면을 가득 집어 들고 양고기도 주문했다. 직접 고른 식재료를 넣으면 주문 즉시 주방에서 조리하는 형식이다. 그 자리에서 조리한 마라탕 속 배추는 센 불에 바로 볶은 듯 아삭했고 양고기는 특유의 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뜨겁고 매운 국물을 가득 머금은 두부는 베어 물면 그 육수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구나’ 생각하고 국물을 떠먹고 당면까지 알뜰하게 먹었다. 화자오를 가득 넣어 찌르는 듯 맵고 칼칼한 맛, 양고기에서 나온 기름에 걸쭉해진 육수야말로 진국이었다. 친구와 둘이서 실컷 먹고 마시고 받아든 계산서에는 2만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이 찍혀 있었다.
정신없이 땀 닦아가며 건져 먹고, 마시고 문을 나섰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꿈에서만 그리던 완벽한 이상형을 드디어 만났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