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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술 취한 원숭이’가 만든 술

등록 2018-10-24 20:13수정 2018-10-25 09:53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술샘 양조장 술 만들기 체험. 사진 백문영 제공
술샘 양조장 술 만들기 체험. 사진 백문영 제공
늘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기만 했다. 연구도 안 하고 그저 누리기만 한 음주 생활은 처음에는 참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허무함은 뭘까?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공허함과 괜한 서운함의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최근 우리 술을 제대로 맛보고 생각을 재정립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누리집 ‘대동여주도’를 운영하는 이지민씨의 초청으로, 적당히 따뜻하면서도 쌀쌀하고 운치 있는 가을날, 경기도 용인의 술샘 양조장으로 향했다. 넓은 잔디밭에 펼쳐진 현대적인 건물은 양조장이 아니라 타운하우스 같았다. 카페와 시음 공간을 합쳐 놓은 공간은 생소하고 신비로웠다.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 후 커피 마시러,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술 마시러 자주 온다”는 신인건 대표이사의 말이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막걸리 빚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이지민씨의 말에 신나서 펄쩍 뛰며 따라나선 이가 나다. 배부른 막걸리와 천편일률적인 패키지 디자인에 질린 터였다. 이곳의 홍국미로 담은 탁주인 ‘술 취한 원숭이’와 살균 탁주인 ‘붉은 원숭이’는 꽤 유명하다. ‘술 취한 원숭이’를 만드는 체험은 놀랍고도 신비했다.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은 뒤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손으로 저어 만들어야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지만, 막걸리 한 병을 만들기 위해 드는 노력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배울수록 그 정성에 감동했다. “효모도 사람과 같아요,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인 20~25℃에서 최고의 맛을 드러내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정성스럽게 돌볼수록 더욱 맛있는 술이 탄생합니다.” 최상철 양조자의 말이었다. 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자, 제대로 돌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였다.

한국 술은 와인이든, 막걸리든, 증류주든, 청주든, 모두 ‘전통주’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예전에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전통’ 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이제는 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막걸리 한 잔, 청주 한 잔에도 양조자의 땀이 서려 있다는 것을. 그런 것이 ‘전통’이 되고 후대에 이어지는 게 아닐까. 마침 술샘 양조장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터다. ‘찾아가는 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우리 술 활성화를 위해 기획한 지역 관광지 연계 사업이다. 2013년 2곳이었던 선정 양조장은 올해 38곳으로 늘었다. 술샘도 그중 하나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하기에도, 막 사랑을 꽃피우는 연인이 데이트하기에도 술샘 양조장만 한 곳은 없어 보였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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