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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죽어도 좋아, 다시 사랑하고파”···노년의 사랑

등록 2018-11-07 19:49수정 2018-11-07 21:17

너 어디까지 해봤어?
영화 <죽어도 좋아> 포스터.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영화 <죽어도 좋아> 포스터.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100세 시대가 되면서 인류는 이전 세대가 하지 않았던 고민을 시작했다. 모든 고민의 핵심은 삶을 두, 세 덩어리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55살에 정년퇴직을 하면 그만큼의 인생을 더 살아야 죽는다. 55살이나 60살 퇴직을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세상이 된 지 오래임을 감안하면 마흔 즈음에 전직을 해야 할 가능성도 크다. 직장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업종을 바꿔 새 도전이 필요할 수 있다.

사랑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을 안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와중에, 결혼을 했다 해도 배우자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2017년 혼인, 이혼 통계를 보면 이혼율은 전년도보다 1.2% 감소했는데 황혼이혼만 큰 폭으로 늘었다.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 이혼이 전체 이혼의 3분의 1(31.2%)에 육박했다. 이혼만 문제는 아니다. 배우자의 사망으로 혼자가 되기도 한다. ‘노년의 사랑’이라는 화두는 그래서 복잡한 양상을 띤다. 첫 번째는 (자녀의 출가 이후) 배우자와 둘만 남은 가족관계를 어떻게 정비하느냐를 따지지만, 두 번째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섹스하고, 새로 가정을 꾸리는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가를 포괄적으로 고민하는 일이 된다.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는 76년째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애틋한 사랑을 이어가는 89살 강계열 할머니와 98살 조병만 할아버지 부부의 이야기다. 실화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2014년 개봉 당시 38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되었는데, 젊은 날에 사이가 좋아야 나이 들어도 오붓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섹스하고 동거하는 노년의 커플 이야기 역시 최고작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왔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2002)는 70대인 이순예, 박치규 커플 이야기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식을 올린 뒤 제목 그대로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간다. 대중문화가 주목하는 사랑의 경험이 20~30대에 한정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여전히’ 뜨거운 사랑 속에 살아가는 노령층의 이야기가 주는 신선함과 뜨거움이 인상적이다.

노년의 사랑에 가장 큰 벽은 건강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와 강풀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추창민 감독의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속 군봉(송재호)과 순이(김수미) 커플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저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배우자의 병 앞에서 인간은 어떤 고민을 하게 되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평생 사랑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변해버린다면, 그래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아내의 병 앞에서 외도나 무관심, 혹은 이혼을 선택하는 남편이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남편의 수를 압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작품들에서는 병든 아내에게 헌신적인 남편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노인의 사랑과 섹스,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 중에 꼭 권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바로 켄트 하루프의 소설 <밤에 우리 영혼은>과 동명의 영화다. <플레인송>으로 잘 알려진 켄트 하루프가 71살에 타계하기 전 발표한 유작인데, 배우자와 사별한,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일흔 즈음의 여성과 남성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밤 애디(제인 폰다)가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의 집을 찾는다. 같이 자자는 청을 하기 위해서다. 섹스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누워있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청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묘한 우정이 시작된다. 침대 옆자리의 온기, 특별할 것 없는 대화가 그립다는 감정으로부터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는 자녀들이 개입하고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자녀들이 부모의 새로운 애정 관계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하고, 또한 (배우자의) 삶의 종말을 경험한 뒤에 발견하는 우정과 사랑이 무엇인지 눈부시게 보여준다.

이다혜/ 작가·<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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