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아마추어 서울’ “서울 동네 10년 역사, 지도에 담았죠”

등록 2018-11-30 09:50수정 2018-12-03 18:54

커버스토리┃지도

서울의 동네 지도를 꾸준히 만들어 온 이들이 있다.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동기인 유혜인·조예진·김지은·김은영(34)씨로 구성된 지도 제작 프로젝트 그룹 `아마추어 서울‘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9년부터 서울 종로구 재동·익선동과 중구 을지로 등 서울의 옛 동네를 지도를 통해 재조명해왔다. ‘아마추어 서울’이라는 이름처럼 정식으로 지도 제작 방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올해로 서울의 동네 지도를 만들어온 지 10년째다. 시간과 돈을 들여 이 일을 해온 이유는 뭘까. 19일, 22일 서울 종로구 을지로3가 근방에서 이들을 직접 만났다.

지난 22일 유씨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예진(사진 왼쪽)씨와 함께 `아마추어 서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난 22일 유씨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예진(사진 왼쪽)씨와 함께 `아마추어 서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사장님, 같이 가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예지동의 한 골목. 지도 제작 프로젝트 그룹 ‘아마추어 서울’의 유혜인씨와 조예진씨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믹스커피, 쌍화탕, 칡즙 등 5∼6가지 음료를 갖춘 낡은 카트의 주인 김인식(가명·71)씨를 쫓기 위해서다. 이날 이들은 김씨의 카트를 조용히 따라 다니며 그를 관찰하다가, 슬쩍 질문을 던지곤 했다.

“오늘은 많이 파셨나요?”, ”말도 마. 익선동 쪽은 새로운 가게들이 잔뜩 들어와서는, 단골들이 다 빠져 나갔어.” 김씨가 단골과 얘기라도 나누면 유씨는 귀를 쫑긋 세운다. ‘작지’(작업일지)처럼 동네 제본소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이 들리면 노트에 얼른 적어둔다. 김씨는 “이 아가씨들이 매번 쫓아와서 서울의 동네 얘기를 해달라고 그러네”라며 웃었다.

유혜인·조예진·김지은·김은영씨는 유명 커피전문점을 찾는 것보다는 각자 살던 동네의 오래된 가게에서 맥주를 나눠 마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유씨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조씨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 김지은씨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김은영씨는 서울 마포구 당인동에서 보냈다.

대학 동기로 만난 뒤 이들이 즐겨 찾던 동네는 서울 종로구 북촌(재동·계동·원서동) 일대였다. 조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2007년경 북촌에 외지인들이 세운 체인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평소 애정을 갖고 있던 서울의 옛 동네들이 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원래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게 이들이 동네 지도를 만들게 된 이유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각자 생업이 있어서 지도를 만들려면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야 했다. 발품을 팔며 동네를 취재하는 일은 둘씩 짝을 지어 돌아가면서 했다. 유씨는 “한 지도를 만들 때마다 3개월 이상은 그 동네에서 산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수치의 정확성을 위해 기존의 서울시에서 공개한 지도 틀을 그대로 이용했지만 지명과 명소,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아마추어 서울’만의 지도를 만들어 나갔다.

프리랜서로 책·인쇄물을 편집 디자인하는 유씨와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인 김지은씨가 주로 지도 디자인을 맡았다. 책과 그래픽을 다루는 두 사람의 협업은 독특한 결과물로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장사동을 다룬 호(2017년)에서는 토박이가 운영하는 서점 지도가 등장한다. 1968년 처음 개업한 ‘세운기술서적’ 내부 지도다. 유씨는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버텨온 ‘터줏대감’ 서점인 만큼 어떤 장르의 책이 구비됐는지 내부만 살펴도 이 동네만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모 대기업에서 상품 디자인과 브랜딩 일을 하고 있는 김은영씨와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 겸 문화예술 기획가로 활동 중인 조씨는 동네 지도 매 호마다 콘셉트를 잡았다. 일례로 서울 중구 초동 거리를 담은 호(2017년)에서는 토박이 인쇄업자 백태종씨의 얘기가 담겼다. 백씨가 20년 넘게 즐겨 찾던 단골 거래처와 식당들이 지도에 표시됐다.

‘아마추어 서울’의 지도가 특별한 이유는 더 있다. 그 동네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도 소개한다. 서울 종로구 초동을 포함한 인근 인쇄업 밀집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운송수단 ‘삼발이’가 그렇다. 오토바이 뒤에 네모난 화물칸을 단 이 삼륜차는, 차량 진입이 어려운 협소한 골목에서 신속하게 인쇄물을 이송하기에는 제격이다.

그동안 취업·유학·결혼 등 저마다 ‘큰일’이 있었지만 지도 제작은 단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최근 미국으로 유학 간 김지은씨, 직장 일로 부산에 터를 잡은 김은영씨는 지도 디자인 일을 돕는 식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10년 전 ‘아마추어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종로구 북촌을 소개하는 지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서울 종로구 익선동(2012년), 서울 종로구 독립문·서대문(2013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2017년), 서울 중구 초동(2016년), 서울 종로구 장사동(2017년)이 나왔다.

'아마추어 서울'이 만든 지도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아마추어 서울'이 만든 지도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난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유씨의 사무실에서는 오는 12월에 나올 ‘서울 종로구 예지동’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조씨도 함께였다. 해마다 발행되는 ‘아마추어 서울’의 지도 부수는 약 200~700부 선. 부수 발행의 편차가 큰 이유는 제작 자금 때문이다. 그동안 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등에서 지원금을 받아 지도를 제작해 왔다. 예상보다 지원금을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비를 들일 때도 많아 손해도 많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을 묻자 이들은 “(동네를)기억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아마추어 서울’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호.(2015년) ’아마추어 서울’ 제공
‘아마추어 서울’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호.(2015년) ’아마추어 서울’ 제공
자신들과 같은 이들을 위해 조씨는 최근 사람들이 직접 동네 지도를 만들 수 있는 앱을 개발 중이다. 동네의 흔적을 사진과 음성 등으로 기록할 수 있는 지도 앱이다. 유씨는 지난 5월부터 두달간 <구석구석 속닥속닥 이야기지도>라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해, 서울 성산초등학교와 봉래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도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달라”는 말에 이들은 지도를 펼쳐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음을 담아 기록했어요.”

유씨와 조씨가 ‘아마추어 서울’의 지도를 보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유씨와 조씨가 ‘아마추어 서울’의 지도를 보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도 지형을 기호·문자 등 객관적인 형식을 사용해 실제보다 축소된 형태로 평면상에 나타낸 것을 뜻한다. 종래의 지도는 대부분 종이로 만들어졌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웹 지도, 지도 앱 등으로 형식이 다양화됐다. 최근에는 ‘채식 지도’, ’반려동물 지도’ 등 개인의 취향을 담은 지도 앱도 등장했다. 거주지 일대를 직접 다니면서 스스로 지도를 제작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른바 ‘지도 라이프’가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그윽한 가을 정취 짙어지게, 후각 사로잡는 ‘만리향’ [ESC] 1.

그윽한 가을 정취 짙어지게, 후각 사로잡는 ‘만리향’ [ESC]

눈으로만 담아온 수많은 새벽 별빛 뒤에 지리산의 일출이 왔다 [ESC] 2.

눈으로만 담아온 수많은 새벽 별빛 뒤에 지리산의 일출이 왔다 [ESC]

[ESC] 오늘도 냠냠냠: 1화 연남동 감나무집 기사식당 3.

[ESC] 오늘도 냠냠냠: 1화 연남동 감나무집 기사식당

[ESC] 오늘도 냠냠냠: 2화 압구정동 한솔냉면 4.

[ESC] 오늘도 냠냠냠: 2화 압구정동 한솔냉면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5.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