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컸다. 생고기를 불에 바로 구우면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잘 구운 고기에 흰쌀밥, 그리고 잘 만든 찌개면 그야말로 한국인의 소울푸드,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한 상이다. 굳이 ‘맛있는 고깃집’을 찾아다니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느 동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의 차이는 있어도 맛의 편차는 크지 않다.
날이 추워 길거리는 헤매고 싶지 않을 때, 실패하지 않을 맛집을 찾고 싶을 때, 일행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다’ 허풍을 떨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서울 을지로 ‘돌고돈’이다. 처음엔 ‘상호가 왜 이렇지?’라고 의문을 가졌다. 나중에 주인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은 심드렁한 “그냥, 별 뜻 없어”였다. 하여간 돌고 돌아 ’돌고돈’은 내 단골 식당 목록에 올랐다.
그야말로 혹한기의 추위였다. 체감온도는 영하 17도에 달했다. 그때 그곳을 기억해 냈다. 정확히 말하면 지하철 을지로3가역과 을지로4가역, 충무로역 삼각지대의 정중앙, 세운상가 건너편 작은 골목에 있다.
저녁 6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식당 안 가득 찬 인파가 낯설고 놀라운 것도 잠시, 벽에 있는 메뉴판을 보고 또 놀랐다. 1인분이 아닌 ‘한 대접’ 단위로 파는 것도 신기한데, 그 한 대접이 무려 500g. 1만5000원이다. 갈매기살 등 술을 부르는 메뉴가 한가득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갈매기살 한 대접을 주문하라’는 지인의 말을 용케 기억해냈다. 주문하자 스테인리스 대접에 갈매기살이 한가득 나왔다. 뭉텅뭉텅 썬 허름한 모양새, 대접에 한가득 산처럼 나온 고기만 보고 있어도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고 소주와 맥주를 신나게 섞었다. 고소한 청국장을 떠먹고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다 시원한 ‘소맥’(소주+맥주)을 마시면 벌써 마음은 힙스터다. 짭조름하게 밑간이 된 갈매기살은 그냥 먹어도, 양파 장아찌와 상추와 함께 먹어도 기가 막힌다. 그냥 고깃집이 아니다. ‘싸고 양 많은, 허름한 진짜 맛집이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때쯤 모둠 한 대접을 주문했다. 쫀득한 돼지 껍데기, 막창 등 그날그날 나오는 부위가 달라지는 모둠은 그야말로 술안주의 압권이다.
행동반경이 작아지는 이 추운 혹한기지만, 맛있는 음식은 늘 필요하다. 늘 적당히 취해 있으면 세상은 아름답다.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부담 없이 나 자신을 대접할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 매일은 아니어도, 때때로, 기왕이면 자주 나를 배려하면서 살기로, 고기를 씹으며 다짐하고 나오는 새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