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당은 네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갈 수 있는 곳이다”는 소리를 들었을 당시에는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 몰랐다. ‘내 직업이 뭐 어때서?’, ‘프리랜서라 시간이 많다는 소리인가?’ 추측에 추측을 거듭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어쨌든 그 신기한 식당이 궁금한 것도 나이고 아쉬운 사람도 나니까 그냥 말없이 그런 말을 한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지하철 1호선 방학역과 창동역 사이에는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진 쌍문동과 방학동이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다.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술과 맛있는 음식은 먹고 싶었다면 큰 욕심일까? 친구가 으스대며 ‘친히 데려가 주겠다’고 한 곳이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수정궁’이었다. 명절에 먹는 만둣국, 시판 냉동 만두, 각종 향신료가 듬뿍 든 중국 만두 등 거의 모든 만두를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만만하게 추천한 만둣집인 만큼 기대가 앞섰다. 하지만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 식당과 지나치게 추운 날씨 때문에 짜증이 났다. “도대체 언제쯤 도착하느냐?”는 짜증 섞인 말에 친구는 말없이 주택가 언덕으로 발을 옮겼다.
중국집을 연상시키는 빨갛고 커다란 간판에 한자로 적힌 ‘수정궁’만으로는 만두 전문점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한자 밑에 자그마하게 쓰인 ‘오향장육, 물만두 전문’이라는 한글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됐다.
테이블 5개 남짓인 중국집. 자그마한 매장에는 만두가 내뿜는 훈김과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했다. 메뉴도 단출했다. 물만두, 통만두, 군만두, 오리 알, 오향장육, 고기튀김, 소고기 튀김까지 총 7개의 메뉴만이 달랑 적혀 있었다. “초심자는 군만두와 물만두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군만두와 물만두를 먼저 주문했다. 만두는 보기에 무척 소박했다. ‘무엇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까’라고 되뇌며 군만두를 베어 무는 순간 당황했다. 샤오룽바오(중국 딤섬 중 한 종류)를 씹는 듯 흐르는 육즙과 촉촉하고 보드라운 돼지고기, 아삭하고 향긋한 부추가 입안을 휘감았다. “도대체 이게 뭐냐”는 말을 하기도 전에 젓가락은 물만두로, 그리고 또다시 군만두로 향했다.
만두를 신나게 해치운 다음 코스는 오향장육. 간판에 당당하게 적혀 있던, 그 오향장육이다. 이곳의 오향장육 생김새는 다른 중국 음식점과는 무척 달랐다. 진한 소스나 바닥에 깔린 간장 따위는 없었다. 그저 보드랍게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길게 썰어 얹은 파채가 다였다. ‘싱겁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촉촉한 돼지고기는 놀랍도록 간이 딱 맞았고, 퍽퍽하거나 비린 맛도 없어 그대로 목구멍으로 숭덩숭덩 넘어갔다. 멀리서 왔으니 술은 마시지 않고 자중하겠다는 다짐도 이 대목에서 이별을 고했다. 맥주로 시작해 ‘소맥’으로, 다시 맑은 소주로! 정신은 저 먼 세계로 아득히 떠나갔다.
이렇게 의외의 식당이 의외의 동네에 있는 경우는 사실 생각보다 흔하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정말이지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맛집을 찾아 나서고만 싶다. “나 맛집 많이 알아”라는 소리야말로 쓸모없는 헛소리라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 고수는 많고, 치명적인 궁극의 맛 컬렉터는 여전히 부지런하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