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게 먹고 마시기 위해서 여행길에 올랐다. 봄기운이 돈다고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아직 쌀쌀하다. ‘따뜻한 남쪽 땅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다 오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다. 목적지는 경상북도 울진. 케이티엑스(KTX)도 닿지 않는 곳이라서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유난히 드문 배차 간격인 고속버스를 잡아타든,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가든, 서울에서는 4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우리 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많은 양조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울진에는 막걸리 양조장 ‘울진술도가’가 있었다. 울진의 술꾼이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라고 한다. 1954년에 지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즈넉하고 아담한 양조장이다. 물 맑기로 유명한 울진 왕피천계곡의 물로 만든다는 홍시표 대표의 설명이 믿음직하다. 우유를 마시는 듯한 부드러운 목 넘김에 반해 대표의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막걸리만 속절없이 꿀떡꿀떡 삼켰다.
울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그때부터 마시기 시작한 막걸리 기운 때문인지, 바닷바람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취했다. “낮술이 좋다”고 기세 좋게 주장한 결과는 참혹했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취기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숙취가 계속해서 몸을 괴롭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다 마을 술꾼의 비기인 곰칫국이다.
울진군 죽변항에는 동해안에서만 잡히는 못생긴 생선 곰치로 만든 곰칫국을 파는 식당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특유의 미끄덩거리는 식감과 아귀보다도 못생긴 생김새 때문에 천대받던 곰치가 이제는 별미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 지역에서 곰칫국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죽변우성식당’으로 향했다. 요즘에는 서울에도 곰칫국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산지에서 곰치를 알현하고 먹는 기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환할 수 없다.
한 사람당 한 그릇씩 나오는 곰칫국은 평소에 봐 왔던 모양새와는 무척 달랐다. 김칫국을 연상시키는 빨간 국물이 한 대접이었다. 그 속에는 뭉텅뭉텅 썰어 넣은 큼지막한 곰치 덩이들이 들어있었다. ‘무슨 맛일까’ 생각하며 한 숟가락 뜨자 물컹하고 흐물흐물한 곰치가 함께 딸려 올라왔다. 정수리를 치고 내려오는 시원하고 얼큰하고 칼칼한 그 맛! “시원하다”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마성의 국물이다. 진하고 걸쭉한 생선 매운탕이나 고기를 넣어 끓인 얼큰한 해장국과 결이 다른 이 맛은 오직 못생긴 생선, 곰치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다.
‘떠나보면 알게 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오늘도 느낀다. 좋은 것은 다 서울에 있다고들 하지만, 직접 방문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가치도 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