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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똠얌꿍 한 숟가락···타이 왕이 부럽지 않네!

등록 2019-03-14 09:12수정 2019-03-14 20:59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팟타이 로열’의 팟타이. 사진 백문영 제공
‘팟타이 로열’의 팟타이. 사진 백문영 제공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외국 출장이 잦았다. 독일 베를린, 그리스 산토리니, 일본의 니가타 등. 적은 경험이었지만, 그때 느꼈다. 직장인이 외국 출장에서 느끼는 것은 허기가 아니라 고달픔과 외로움이라는 것을. 속 모르는 이들은 ‘회삿돈으로 외국에 놀러 가니 좋겠다’는 막말을 해댄다. 그런 소리를 들을수록 분노만 치밀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해외 나들이는 역시 내 돈 써서 가는 여행뿐이다. 몇 해 전 연말 휴가를 보내기 위해 따뜻한 타이 방콕으로 갔다. 나만을 위해 먹고, 걷고, 쓰고, 마셨다. 지금도 방콕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 따뜻한 기억 때문이다.

타이에 가본 이라면 안다. 타이야말로 값싸고 양 많고 맛도 있는, 궁극의 외식 성지라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세끼를 집에서 먹지 않고 외식한다는 흥미로운 얘기까지 여행길에서 들었다. 추억을 잊지 못해 한국의 타이 음식점을 성지 순례하듯 여러 군데 다녔다. 그중에는 만족스러운 집도, 기대에 못 미치는 곳도, 타이 음식을 표방하지만 국적 불명인 음식점도 있었다. 타이 음식이 대중화한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실망스러운 음식점을 만날 때마다 드는 절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팟타이 로열’의 실내. 사진 백문영 제공
‘팟타이 로열’의 실내. 사진 백문영 제공

‘새로 생긴 타이 음식점에 가자’는 말을 친구에게서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너무 기대하지 말자’ 였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인근에 있는 ‘팟타이 로열’의 간판을 마주했을 때 든 생각이었다. 한국의 불고기에 버금갈 정도로 전 세계인이 아는 고유명사이자 흔한 쌀국수 볶음 음식을 상호로 내세웠다니. 하지만 입구로 들어섰을 때야 알았다. 그저 그런 집이 아니었다. 방콕에 있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비슷해 보였다. 금빛으로 꾸며놓은 인테리어와 알록달록한 쿠션, 나무를 조각해 만든 장식품까지 ‘타이 스타일’이 아니라 타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인테리어에만 감탄할 수는 없는 법.

‘팟타이 로열’의 메뉴. 사진 백문영 제공
‘팟타이 로열’의 메뉴. 사진 백문영 제공

팟타이, 똠얌꿍, 파인애플 볶음밥, 솜땀과 같은 기본적인 메뉴부터 똠얌까이(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닭고기 스튜), 타이식 돼지고기 꼬치구이까지 다양했다. 타이 현지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이 가득했다. 똠얌꿍과 솜땀, 팟타이를 주문했다. 솜땀은 길게 썬 파파야와 방울토마토, 땅콩과 타이 줄기 콩을 함께 무친 음식이다. 기분 좋은 아삭함과 특유의 매콤한 향이 ‘이 집이 보통 집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했다. 이 집만의 특제 양념장을 넣어 만든 똠얌꿍도 근사했다. 사골 국물을 연상시키는 듯 깊고 진한 국물, 서서히 느껴지는 매콤하고 달콤한 맛, 고소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소주 마실래?” 라는 말이 그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타이 로컬 맥주 한 병과 우리나라 소주 한 병을 도란도란 나눠 마시면서 똠얌꿍을 떠먹고, 솜땀을 씹어 먹고, 팟타이를 목 뒤로 넘겼다.

진짜 내공 있는 집은 재야에 숨어 있다. ‘팟타이 로열’이라는 다소 평범한 상호 뒤에 진짜 타이가 숨어 있었다. 맵고 짜고 달고 신 이곳의 타이 음식이야말로 술친구이자 든든한 한 끼다. 타이의 넉넉한 인심을 닮았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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