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름 한 철을 잘 보내려면 보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그저 비싼 음식을 먹기 위한 핑계로만 들렸다. 가만있어도 더운 여름날에 김이 펄펄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몸보신을 한다니! 땀만 빼고 기력은 더욱 쇠할 것만 같았다. 지난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왜 이렇게 유난히 힘이 안 나지, 너무 더워서인가’ 생각하던 때 문득 떠오른 것이 보양식이었지만 먹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저씨도 아니고 무슨 보양식인가’ 싶었지만, 기력이 날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보양식 원정대가 따로 없네”라고 말하며 비웃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집 나간 기력만 돌아올 수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술을 마실 수 있는 기력도, 남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마음 모두 넉넉한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던 터였다.
삼계탕과 백숙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맛집은 문전성시라서 몇십 분씩 줄을 서다 보면 그나마도 있던 기력마저 떨어진다. “자신만 아는 보양식 맛집 없냐”고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며 알아낸 곳이 서울 답십리의 ‘풍년식당’이다. 친구는 무작정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2번 출구로 나오라”는 소리만 했다. 장한평역에 내려 좁은 골목을 따라 몇 발짝 걸어 들어가면 풍년식당이 나타난다. 오리지널 레트로(복고풍) 디자인이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낡은 미닫이문에 적혀 있는 ‘보신탕’, ‘사철탕’. 글씨에 살짝 겁을 먹고 들어섰다. 모든 테이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뚝배기가 놓여 있다. “오리 전골은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전화로 주문했다”는 친구의 당당함이 믿음직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이 가져온 큼지막한 뚝배기에는 걸쭉하고 국물이 한 가득하였다. 국자로 뚝배기를 휘휘 저었다. 사뭇 묵직한 국물의 밀도 때문인지 제대로 젓기가 힘들었다. 오리 한 마리와 찹쌀을 냄비에 넣고 1시간 이상 푹 끓여냈기 때문일까, 죽을 연상시킬 정도로 푹 익은 찹쌀과 완전히 풀어진 오리 살이 식욕을 자극했다. 흔히 ‘오리 비린내’라고 하는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향긋한 한약재의 향, 쫀득한 찹쌀의 식감과 부드럽게 씹히는 오리 살이 입안에서 조화를 이뤘다. ‘제대로 된 보양식 집을 찾았네’ 생각하며 계속해서 숟가락을 놀렸다. 함께 나오는 3종의 김치도 얹어 먹었다. 푹 익은 갓김치와 아삭하고 매콤한 파김치, 그리고 시원하게 잘 익은 총각무 김치까지. 정겹고 든든했다. 이런 보양식에는 당연히 술이 필요하다. 오리 전골을 먹으면 따라 나오는 이곳의 약주는 한약재를 듬뿍 넣어 만든 것이다. 먹는 순간 은은한 향이 입안으로 퍼졌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풍년식당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듀펠 센터’로 향했다. 패션 디자이너 안태옥이 설계한 이 건물은 옛날 목욕탕을 개조해서 만든 복합문화센터다. 건물 안에는 각종 식당부터 세련된 카페, 패션 매장까지 입점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것이 가득하다. 옷도 구경하고, 커피도 한 잔 사 마시면서 도시의 맛을 만끽했다. 서울에는 아직도 이렇게 낡고 새로운 것들이 가득하고, 이렇게 또 여름이 시작된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