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과제’처럼 느껴지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팍 삭아 암모니아 냄새가 큼큼하게 올라오는 홍어회라든가, 숙성 향이 한껏 나는 치즈, 잘 익은 묵은김치 같은 것이다.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 냄새는 입맛 당기는 향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절대 익숙해 질 수 없는 냄새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무턱대고 입에 넣어보는 무식한 성정 탓에 내겐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홍어야말로 호불호 갈리는 음식의 결정체다. “홍어 먹으러 가자”고 친구들을 꼬여낼 수 없는 이유다. ‘딴 것은 다 먹어도 홍어는 절대 못 먹는다’는 이가 친구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특유의 찌르는 듯한 냄새와 오독오독한 감촉이 그리웠지만, 몇 달째 침만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친구 무리에서 ‘홍어계’가 생겼다.
흑산도에서 나는 국내산 홍어는 꽤 몸값이 비싸다. 혼자는 사 먹기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함께 홍어를 나누는 친구가 4명 이상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여러 부위를 먹을 수 있다. ‘홍어회뿐만 아니라 다른 요리도 이것저것 제대로 먹어보자’며 의기투합해서 친구들과 찾은 곳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흑산도 홍어’다. ‘홍어 연구소’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는 소리에 ‘연구소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일 일이냐’고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4명 이상이 모이면 1인당 5만원에 홍어 요리를 코스로 맛볼 수 있다.
미리 도착한 일행들은 이미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홍어 먹기도 전에 뭘 마셨냐”는 내 책망에 친구들은 사과 브랜디를 유리잔 가득 부어 말없이 건넸다. 예약할 때 미리 말만 하면 콜키지(와인 잔 비용) 지불 없이 가져온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소리에 자꾸만 근거 없는 용기가 생겼다.
적당히 삭힌 홍어회와 돼지고기 수육, 데친 콩나물과 미나리 무침이 깔렸다. 양념 소금에 찍은 생 홍어회 한 점에 술 한 모금, 부드럽고 따뜻한 수육에 묵은지를 싸서 한 입 크게 넘겼다. 삭힌 홍어는 열을 가하면 그 향과 맛이 더욱 강렬해진다. 눈앞에서 직접 토치로 불질한 뜨거운 홍어를 입에 넣는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찌르는 듯한 그 풍미, 민트를 입에 한가득 머금은 듯한 느낌! 고소했다. 찜기 가득 나오는 뜨거운 홍어찜, 홍어 만두, 한 마리에서 극소량만 맛볼 수 있다는 쫀득한 홍어 코와 홍어탕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내내 입 안에서 불을 품는 듯 뜨겁고 시원한 느낌을 감돌게 했다.
달콤하고 진한 사과 브랜디를 쭉 들이켜고 입안 가득 홍어를 씹는 밤만큼 호사스러운 밤이 또 있을까? 어른이 뭐 별건가? 이런 것이 어른의 맛 아닐까? 큰 임무를 완수한 사람처럼 뿌듯한 마음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