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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소파 안 사요 편의점 테이블 써요

등록 2019-11-14 09:36수정 2019-11-15 09:35



미니멀리스트 다룬 드라마 인기
원룸에서 집치장은 의미 없어
큰 집도 혼자 살면 원룸
자연과 교감하는 집은 외로움 없애줘
1인 가구 시대 집 밖으로 확장된 공간 필요
건축가 정의엽의 ‘하늘문집’은 빗물이 떨어지는 풀길, 바람길을 건물 내부 깊숙이 2층까지 끌어들여 자연이 주는 감각적 경험을 배려하는 공간이다. 사진 신경섭 제공
건축가 정의엽의 ‘하늘문집’은 빗물이 떨어지는 풀길, 바람길을 건물 내부 깊숙이 2층까지 끌어들여 자연이 주는 감각적 경험을 배려하는 공간이다. 사진 신경섭 제공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는 유루리 마이의 만화 에세이를 바탕으로 만든 일본 드라마다. 자타 공인 ‘버리기 마녀’인 그가 물건에 대한 집착과 결별한 후, 소위 생활미니멀리즘을 꿋꿋하게 실천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첫 에피소드 구성에서 차이가 눈에 띄었다. 원작에서는 그가 미니멀리스트로 살게 된 계기를 다루는 반면, 드라마는 친구들 초대 장면을 앞서 배치한다. 텅 빈 집안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손님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 안 구석구석을 공개하는 마녀의 당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시험대가 거주자의 불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물건을 매개로 한 타인과의 대화는 우리 사회의 공인된 프로토콜이다. 구매의 거부란 곧 평가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드라마는 재차 묻는다. 어쩌면 우리가 물건으로 집을 꾸미는 것은 누군가에게 내 아이덴티티를 확인받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비록 손님은 아주 가끔 올 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물건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집은 그저 커다란 상자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1인용 커다란 콘크리트 텐트? 원룸

물건이 존재감의 상호 인증을 위한 수단이라면, 그중 가장 비싸고 큰 것은 단연 집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시대에는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싱글 대부분의 원룸에는 치킨 배달원 외에는 그 누구도 결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무리 멋지고 찬란한 물건들이라도 원룸에선 빛을 잃는다. 인테리어란 애초부터 누군가와의 대화를 위해 고안된 제품인데, 온수가 나오는 1인용 콘크리트 텐트에 지나지 않는 원룸에는 집치장이 가당치 않다. 의미 있게 자리를 차지할 물건은 몸치장을 위한 옷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몽골식 파오형 집? 훈훈한 가족 풍경 만드나?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패턴랭귀지>에서 아빠와 엄마, 아이들의 독립된 공간과 공유 공간을 이야기했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숨겨진 차원>에서 설명한 사적인 대화의 거리 0.45~1.3m를 토대로, 모름지기 집이란 가족 구성원의 소속감과 동시에 독립감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각각의 폐쇄적인 방으로 분리된 집의 전통적 구성 방식에 반대했는데, 그 대안은 알코브(Alcove·벽면을 우묵하게 들어가게 해서 만든 공간)로 이루어진 몽골식 파오형의 집이다. 상상만 해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 커다란 친족 공간에 대한 묘사에서 느껴지는 노스탤지어적 감성은 지금도 충분히 훈훈하다. 하지만 복닥복닥한 가족이 사라진 2019년도의 파오에서 알렉산더의 텍스트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큰 집이라도, 혼자 살면 결국 원룸이다. 스튜디오는 방 하나란 뜻이지만, 한국어 원룸은 사람 하나란 뜻이 되었다. 퇴근 후, 아무것도 없는 집에 불을 켜는 순간 우리는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큰 유리창 있어도 우리 집은 감옥?

우리말의 집이란, 영어의 ‘홈’과 ‘하우스’를 합쳐놓은 단어다. 집밥이라고 할 때는 홈이란 뜻이고, 집세라고 할 적엔 하우스란 의미가 된다. 홈이라는 의미가 빠진 집(혼자 사는 집)은 때때로 감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큰 유리창을 내어놓아서 애써 그렇지 않은 체하지만, 시각이란 언제나 기만적인 감각이다. 내적으로 침잠하는 우울함을 증폭시키기에 한쪽으로만 뚫린 단열 및 방음 100%의 큰 유리창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멜랑콜리한 감정이란 완벽한 차단을 통한 자기와의 대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 그리고 침팬지에 관한 연구들은 위로와 행복이 접촉을 통해 발생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접촉일수록 강도가 크다. 홀이 말하는 근접 수용기관, 즉 피부, 점막, 근육을 통한 접촉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인간은 그나마 원초적 감각인 냄새와 소리에 의지하게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 벽인 커튼월 아파트는 천재적으로 이것을 막고 있다. 시각적 투명성은 여타 감각의 완벽한 봉쇄를 재차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상수리나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원룸 면앙정은 조선시대의 ‘에어컨’이다. 사진 최이규 제공
상수리나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원룸 면앙정은 조선시대의 ‘에어컨’이다. 사진 최이규 제공

캠핑이 인기 있는 이유

옛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시각 이외의 신호에 풍요로웠다. 바람에 실려 오는 습도와 꽃과 숲의 내음, 길가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빗소리, 새소리, 귀뚜라미 소리 등.(환청일지 모르지만, 소백산 자락의 산촌 너와집에서 나는 흙 지붕 안에서 꿈틀거리는 구렁이의 뒤척임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 옛집은 여름을 위한 집이었다. 훌렁훌렁 열어젖힌 집이었고, 꽁꽁 싸맨 집이 아니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는 담양이다. 면앙정(전남 담양군에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의 마루에 드러눕자면 들려오고 실려 오는 소리와 냄새와 살갗에 닿는 바람의 감촉은 그야말로 감각의 오케스트라로 부를 만하다. 아파트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전망이란 오히려 너무 하찮은 것이다. 면앙정은 16세기 사람들이 고안해 낸 에어컨이었고, 감각의 샤워였다. 후각, 청각, 촉각이 총동원된 원초적 자극을 통해 거주자는 홀로 있어도 외로움이나 우울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혼족 사회의 사람들이 캠핑이나 등산에 열광적인 것은, 그러한 지혜를 무의식적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집 근처 공간 구성

원룸의 유일한 덕목은 기능의 공간적 분산이다.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 쓰는 물건을 굳이 살 필요는 없다는 미니멀리즘은 매우 합리적 선택으로 보인다. 커피머신을 들여놓는 대신 동네 카페를, 소파를 구입하는 대신 편의점 피크닉 테이블을, 이것저것 부엌살림 대신 근처 식당을, 건조대를 펼치는 대신 빨래방을 이용한다. 동네를 내 집처럼 쓴다. 텃밭을 일구는 경우도 있다. 근처에 자연이 부족하다면, 도시적 자극이 대신할 수 있다. 그런데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무척 영역적인 동물이다.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이 집 가까이에 있어야 내 집의 크기가 커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 나가려고 신이 난다. 아이들은 놀이기구와 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임이 당연한데, 어른들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놀이터를 만들 때는 ‘가까이’에 따옴표를 쳐야 한다.

내 집의 밖으로 확장

바깥에서의 활동이 편해질수록 만족감이 상승하고, 우울감이 줄어든다고 한다. 특히 전적으로 친밀한 공간과 완전히 공적인 공간 사이의 중간 어느 지점이 많을수록 집은 집으로서의 가치를 발한다. 집 안과 밖의 전이과정이 생략되고 격차가 너무 크게 되면, 경험의 폭은 극단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사회적 교류가 생길 가능성조차 차단된다. 집 근처의 공적 공간에서는 언제든 우리 집의 방, 화장실, 부엌에 갈 수 있어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골목을 걷다 보면, 길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사람이나 잠옷 차림으로 장기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건축가 얀 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부 공간이 외부 공간으로 인해 보충되는 현상이다. 1인 가구의 사회에서 좋은 집이란 예전에 좋았던 집과 다르다. 집 앞 길이 거실 같고, 마당처럼 느껴지는 집이다.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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