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에 대한 피로감과 ‘요즘 핫한 곳’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양면적인 감정이 경쟁하듯 함께 찾아든 날이었다. 새로 생긴 예쁜 공간에서 사진 찍고 먹는 것을 즐기는 친구는 이른 오전부터 어딘가에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녀와서 어땠는지 알려 달라”며 심드렁하게 말했을 테지만, 명색이 맛 관련된 직업인 아닌가! ‘한 달에 한 번은 요즘 젊은이들 가는 곳에 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급한 마음에 운동화만 대충 꾸겨 신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으로 향했다.
한겨울의 맹추위도 무색할 만큼 친구는 날쌔고 부지런했다. “오픈 시간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지 않으면 한참 줄을 서야 한다.” 경고가 추위보다 더 무서웠다. 도산공원 인근에 있는 ‘카츠바이콘반’이 그날의 목적지였다. ‘돈가스를 먹자고 이 난리를 친 건가’ 하는 생각에 허망함이 몰려들었지만, 넓고 커다란 유리창과 세련되고 단정한 포스터, 늘어선 줄을 보니 은근히 기대됐다.
기다린 지 20여 분. “가게 안으로 입장하라”는 말이 반가웠다. 남들이 아직 모르는 곳에 온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돈가스 전문점을 표방하는 만큼 메뉴는 단출했다. 돼지고기 등심으로 만든 로스카츠, 안심인 히레카츠와 치킨 가라아게, 그리고 ‘히토쿠치 카레’가 전부다. 기왕 온 김에 다 맛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음식을 주문했다. 새로 생긴 곳답게 내부는 독특했다. 넓은 오픈 키친에서는 계속 돈가스가 튀겨지고 있었다. 모든 좌석은 바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급 바나 초밥집을 방문한 듯한 정갈하고 깔끔한 좌석은 마음에 쏙 들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듀펠 센터에 위치한 ‘콘반’의 두 번째 브랜드였다. 카레와 돈가스로 유명한 콘반이 강남구에서 낸 도전장이었다.
로스카츠와 히레카츠는 고급 돈가스 전문점에서 익히 본 모양새 그대로였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옷과 ‘살짝 덜 익혔다’ 싶을 정도로 핑크빛이 감도는 속살이 내 마음을 훔쳤다. 촉촉한 육즙은 잘 살아 있었다. 바삭하고 폭신한 식감도 매력적이다. 느끼하다 싶을 때 양배추 샐러드로 입안을 헹궜다. 양념인 트뤼프(송로버섯) 소금도 별미다. ‘정식 메뉴’ 구성의 하나인 돼지고기 된장국을 곁들이니 속이 뜨끈한 온기로 가득 찼다. ‘돈가스야말로 완벽한 음식이다’라는 과장 섞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갑자기 생겨난 영광이란 없다. 실력 있는 가게가 더 잘하는 것을 볼 때면 보람차다. 낯설수록 궁금하다. 그 궁금증이 신뢰로 이어지는 순간의 희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가 없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