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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형이 권하는 빨갛고 까만 스테이크

등록 2019-12-18 20:48수정 2019-12-19 02:08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비스트로 가마’의 티본스테이크. 사진 백문영 제공
‘비스트로 가마’의 티본스테이크. 사진 백문영 제공

“이탈리아 본토 스타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괜한 반감이 생긴다면 쓸데없는 아집일까? “본토를 가 본 적도 없어 비교할 대상조차 없다”는 불평불만을 앞세우는 까칠한 성격 탓일까? “이 돈이면 현지 가서 먹겠다”는 미식가의 평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형’으로 모시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지인이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에 피렌체가 있다”고 했을 때 들었던 생각도 그랬다. ‘피렌체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건가.’ 열등감마저 들었다.

생활 반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포구 연남동은 도착하면 기진맥진해지는 동네다. 하지만 내 경우가 그런 거고, 연남동이야말로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젊은 사람이 많은 곳에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니’라고 생각하면서 인파를 헤치고 걸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8분 정도 걸으면 ‘비스트로 가마’ 간판이 보인다.

앉기도 전에 시원한 화이트 화인을 벌컥 마시고 있을 때, 이곳의 단골을 자처하는 형이 미리 주문한 ‘치케티’가 나왔다. 치케티는 바삭하게 구운 빵 위에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바르고 올리브, 토마토, 햄 등을 올린 핑거 푸드다. ‘짭조름한데 부드럽고, 단순한 것 같은데 와인이 콸콸 들어가는 이 안주는 도대체 뭐지!’ 와인이 끊임없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갔다. 곧 ‘푸타네스카 파스타’와 ‘카르보나라 파스타’가 등장했다. 일행들은 “이 집의 카르보나라 파스타는 이탈리아 본토에서 먹었던 그 맛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소스를 제대로 묻힌 탕수육을 닮았다. 달걀노른자가 면 사이사이 고루고루 묻은 파스타는 탐스러웠다. 겉돌지도 않고 입안에서 풀어지는 달걀 맛, 크림의 구수한 풍미, 적당히 짠맛의 삼박자가 잘 맞았다. ‘이탈리아 잡탕 파스타’라 불리는 푸타네스카 파스타 역시 그랬다. 입에 넣었을 때 퍼지는 마늘 오일과 안초비의 향, 토마토의 상큼한 맛이 화이트 와인을 계속 불렀다.

“너를 위해 준비한 희대의 메뉴가 있다”고 말하는 형의 말투는 당당했다. 이윽고 등장한 티본스테이크는 놀라웠다. 속은 빨갛고 겉은 새까맣게 구운 이탈리아식 스테이크를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홀리듯 주문한 이탈리아 레드 와인과 티본스테이크 한입, 그리고 파스타를 입에 말아 넣었다.

가보지도 않은 이탈리아가 그리웠다면 과장일까. 겪어봐야 아는 것도 있지만, 경험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도 있다. 낯선 이탈리아가 그리워졌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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