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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만만한 친구 같은 김치찌개, 먹을수록 편안해

등록 2020-01-02 10:11수정 2020-01-02 10:12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김삼보’. 사진 백문영 제공
‘김삼보’. 사진 백문영 제공

‘그냥 편안하게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메뉴야말로 ‘솔 푸드’아닐까. 모처럼 약속이 없는 저녁이었다. ‘오늘은 소식, 음주도 하지 않고 들어가야지’라고 종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둑해질 무렵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밥과 맑은 술이 생각났다. ‘술시’가 찾아온 것이다. 만만한 친구에게 ‘밥 사줄 테니 당장 나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유독 허름하고 낡은 동네, 서울 동대문 일대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장사꾼, 서울 시내 전역에서 몰려든 살마들로 늘 붐빈다. 예전에는 이 동네의 번잡함이 싫었지만, 지금은 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일수록 맛집도 많다는 것을. 유물을 발굴하는 심정으로 골목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곳이 ‘김삼보’(김치찌개·삼겹살·보쌈)다. 커다란 간판에는 ‘김치찌개 30년 전통, 각종 김치찌개, 김치 삼겹살’이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직관적인 간판이었다. 실패하기 힘든 메뉴 구성이다. ‘여기가 진짜 한국이네’라고 생각하며 가게로 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메뉴는 다양하고 단출했다. 참치 김치찌개와 같은 김치찌개 변주부터 삼겹살, 돼지왕갈비같은 고기 메뉴, 달걀말이까지 부족함 없이 내실이 있었다.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려놓고 돼지고기 기름이 흐르는 밑단에 김치를 깔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그 냄새, 이 아련함이란!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반찬으로 나온 무말랭이를 절인 배추에 싸 먹었다. ‘반찬만으로도 소주 한 병이네.’ 웃으며 차가운 소주를 비웠다. 비계가 넉넉히 붙은 삼겹살을 커다랗게 잘라 구운 김치를 돌돌 말아 먹었다. “이 집 돼지고기 잘한다”라는 소리가 그냥 나왔다. ‘김치찌개 맛집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김치찌개를 함께 곁들였다. 지금 보쌈은 안 판다.

이 집의 백미는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먹을 수 있는 솥밥이다. 들어서자마자 쭉 늘어선 뚝배기들을 보는 순간 제대로 음식을 하는 식당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이유다.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주는 솥밥, 짭짤하고 새콤하고 달곰한 김치찌개, 기름이 흐르는 돼지고기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은 과식해도 버겁지 않다. 집에서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대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만한 친구와 허리띠 풀어놓고 먹는 부담 없는 한 끼가 소중한 이유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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