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먹고 마시면서 돌아다니는데도 늘 뭔지 모를 부족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제철 맞은 석화와 방어부터 꽁치와 청어 과메기까지, 이 계절 음식은 웬만하면 다 찾아 먹는데도 그렇다. 특정 지역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든가, 서울에서는 좀체 먹기 어려운 신선한 식재료를 생각할 때마다 늘 아련하고 아쉽기만 했다.
늘 먹는 안주에 술을 마시는 게 영 내키지 않는 날이었다. “대충 적당한 곳에서 마시죠”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안주를 대충 고를 수가 있지. 소중한 한 끼이자 귀한 술자리인데. 별 기대 없이 “어디서 뭘 먹을까요?”라고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활고등어회 어때요”였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동안 무언가 아쉬웠던, 뭔지 모를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먹고 싶던 음식이 고등어회였나 보다.’ 쓸데없는 확신까지 들었다.
서울 종로구 지하철 종각역 주변에는 허름한 맛집들이 많다. 지금에야 을지로가 유명해졌지만, 종각 일대야말로 오래된 음식점이 많은 미식 골목이다.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종로통에서 요즘 산지에서도 먹기 힘들다는 신선한 고등어 회라니. 처음에는 ‘그저 그런 냉동 고등어회이겠지’라고 생각했다.
높디높은 빌딩 숲을 지나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옛날식의 지붕 낮은 종로통 상가와 유사한 ‘삼공 아케이드’가 보였다. 이 상가 지하 1층에 위치한 ‘호미관’은 미식가들에게는 꽤 알려진 일식 노포(오래된 가게)다. ‘이 시국에 무슨 일식이냐’ 싶다가도, ‘음식이 무슨 죄냐’는 생각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어두컴컴하고 낡은 지하에 있는 옛날 그대로의 일본식 선술집 분위기에 마음이 묘하게 설레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양, 맥주 한 잔을 먼저 주문하고 본래 목적인 활고등어 회를 기다렸다. 주문하자마자 주인이 수족관 속에서 작은 고등어를 건져 내는 장면을 보니 뿌듯했다.
맥주 한 잔을 비울 무렵 마주한 활고등어 회는 남달랐다. 초롱초롱하고 청초한 고등어의 눈과 살아 움직이는 꼬리가 ‘지금 막 잡은 것이 맞다’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잘게 다진 생강과 고추냉이를 고등어 회에 살짝 얹은 다음 간장을 찍어 먹었다. 맛은 탄탄하고 쫀득했다. 특유의 비린 맛은 전혀 없었고, 쇠고기 육회를 먹는 듯 달곰한 맛이 입안을 휘감았다. ‘이 안주에는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단숨에 소주 반병을 비웠다. 사라지는 고등어가 아쉬워 앞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술이야 매일 마신다지만, 안주는 거드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 음식과 함께할 때 술판은 더 신이 난다. 사람도, 안주도 결국에는 맛이 있어야 즐겁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