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경이네 건생선의 서대구이. 사진 백문영 제공
배는 부르고, 얼추 취했을 때였다. 누군가가 “시장에서 소주 한 잔만 더 하고 가자”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배는 부르지만 그래도 간단히!”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었다.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생각난 곳이 ‘옥경이네 건생선’이었다. 배 안 부를 정도로 양이 적은, 적절하게 짭조름해 안주로도 훌륭한 건생선은 참 좋은 안주라서 생각이 났다.
서울 지하철 신당역 인근,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핫’한 곳에 인현시장이라고 부르는 재미있는 시장이 있다. 생선, 간식, 건어물, 각종 식재료까지 만물상처럼 파는 곳이다. 무릇 시장이라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취급한다.
옥경이네 건생선은 시장 초입에 있다.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있어서 찾기 쉽다. 말린 생선을 뜻하는 ‘건생선’을 상호로 내세운 것이 놀라웠다. 민어, 우럭, 서대, 병어 같은 평소 잘 알지만, 정작 그 맛은 구별이 쉽지 않은 생선들이 메뉴판에 가득했다. 무엇을 골라도 확실히 맛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말린 서대를 구운 메뉴 ‘서대구이’를 하나 주문하고 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일 시끄럽고 정신없었던 시장이 조용해지는 저녁, 밝은 불이 켜진 곳이라고는 내가 앉아있는 곳뿐이었다. 이때의 안정감은 덤이다. 20여분 있다가 만난 서대구이는 묘하게 생경했다.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서대는 아주 잘 구운 코다리 구이 같기도, 잘 자른 장어구이 같기도 했다. 제철 맞은 생선의 짭조름한 향기. 씹을수록 달곰한 향취가 참 좋았다.
그야말로 술 임자를 제대로 찾은 기분이었다. 꾸덕꾸덕한 서대구이를 뼈 발라 한 점 집어먹고 함께 나온 매콤한 양배추 샐러드도 마저 먹었다. 서대구이 특유의 짭조름한 맛, 간장을 찍어 먹었을 때 느껴지는 극한의 달짝지근한 맛은 그저 생선을 구워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 서울 시내에서 서대나 민어 같은 희귀한 생선을 구워 주는 곳이 또 있을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생선을 만나는 즐거움,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익숙한 식재료의 새로운 면모가 저녁 무렵의 낭만을 선사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