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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나를 농담거리 삼는 친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등록 2020-02-26 21:30수정 2020-02-27 02:41

얼마 전 남성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로 직장을 옮기며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하나 올렸다. 별건 아니고 ‘새 회사에 잘 적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실없는 농담을 댓글로 달까 싶어 걱정은 되었으나, ‘설마’ 하며 지인들의 성숙함을 믿었다. 그러나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오랜 친구 박상구(가명)가 댓글을 달았다. “에스콰이어? 구두회사로 옮긴 건가?” 그 글을 보자마자 낯이 뜨거워졌다. 본문에 분명히 ‘매거진’이라고 써놨는데, 양쪽 회사 모두에게 실례가 되는 발언이다. 이거 우리 편집장도 보는데 왜 그랬느냐고 하니까 그가 대수롭지 않게 “왜? 내가 상처를 주었니?”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생각해보면 상구는 상구를 아는 무리와 함께 놀면 재밌는데, 상구를 모르는 사람과 섞어 만나면 항상 부담이 된다. 약 8년 전 당시 연애 중이던 아내에게 상구를 처음 소개해준 날이 기억났다. 상구는 “아이고 새로운 제수씨구나”라며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그새 여자 친구가 바뀌었어?”라는 농담을 건넸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등골이 오싹하다. 상구는 담배 하나를 피울 때도 라이터를 손가락 사이로 빙글빙글 돌리며 꺼낸다. ‘소맥’을 만들 때면 소주병을 여러 번 돌리고 병목을 거세게 쳐서 나쁜 기운을 빼낸 후 맥주병을 거꾸로 세워 포항 다미촌의 폭탄주 이모처럼 따른다. 상구와 친한 무리와 놀 때는 그의 그런 행동에 대해 ‘또 나왔네. 어디 한번 해봐라’라며 그러려니 하지만, 우리 부장님과 상구가 우연이라도 만나는 장면을 생각하면 오싹하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누구에게나 가끔은 숨기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일단 나의 흑역사를 지나치게 자세히 알고 있는 친구가 기피대상 1호다. 서울 체부동에 사는 임동연(가명)씨는 “자신을 새 모임에 처음 데리고 간, 가교 구실을 한 친구부터 놀리는 부류가 꼭 있다”며 “처음 만나는 그룹에 융화되고 싶어서라고 말하는데, 그런 부류들은 자신이 웃겨야 낯선 모임에서 받아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들을 웃길 만한 소재가 자신을 데리고 온 사람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자리든, 밥을 먹는 자리든, 커피를 마시는 자리든 여럿이 모인 곳에서는 남들을 웃겨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낯선 자리에 데려가면, 데려간 당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십상이다.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진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다. 학창시절 싸움 좀 했던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너 참 많이 컸다” 따위의 말을 꺼내는 일이 가장 좋은 사례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의 모임이라도 어린 시절 친구들이 모이면 이런 말이 꼭 나온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말이다. 아직도 교실 주먹 서열순으로 관계를 사고 해서 생기는 일이다. 이 얘기를 꺼내니 아내는 “뭔가 창피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일부러 자기(남편인 나)한테 안 보여준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결혼 6년차라 이제는 웬만한 아내의 친구를 다 만나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 베스트프렌드만은 아직도 소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때면 항상 내 아내를 두고 “아유, 우리 보라(내 아내의 이름)랑 놀아주셔서 감사해요”라거나 “얘가 워낙 노는 사람하고만 놀아서요”라며 마치 보호자라도 된 듯 놀리려 든다고 한다.

시간을 거치며 형성된 다양한 자아가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 달라진 자아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서로 다른 지층처럼 쌓인다. 어쩌면 생활 영역을 자주 옮긴 내가 좀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감독이 꿈이었으며, 대학교 때는 인디 음악을 했고, 첫 사회생활은 제약회사에서 시작했다. 이후 잡지사를 거쳤고, <허프포스트>에 다녔으며 다시 패션 잡지 쪽으로 돌아왔다. 각각의 단계에서 쌓은 관계의 색이 확연히 다르다. 인디 밴드 음악을 할 때 사귄 친구들과 패션 잡지 쪽 친구들을 섞어 모임을 만들었더니 서로 성향이 달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작품을 비디오테이프로 빌려 함께 보던 친구들과 제약회사 선후배를 함께 모아 만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한탄 섞인 얘기를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로 하며 “너도 가끔 성향이 너무 달라서 장롱 속에 숨기고 싶은 친구가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경우엔 너?”라고.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다른 친구들을 좀처럼 만나본 적이 없다. 상구 얘기를 하기 전에 나부터 창피한 친구가 되지 말자. 오늘도 하나를 배웠다.

글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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