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명주’의 연오랑 막걸리와 세오녀 막걸리. 사진 백문영 제공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술이 출시되는 지금이다. 겨울은 지나가고 봄이 온다지만 아직 마음은 봄이 아니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매일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때문에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 이럴 때는 차갑고 독한 증류주나 달콤한 향이 나는 약주에는 영 손이 가지 않는다. 봄바람을 부를 것만 같은, 부드럽고 낭창한 쌀 막걸리 한 잔이면 쫓기는 듯 움츠러든 마음도 나아질 것만 같았다. 요즘은 어딘가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술과 음식을 먹는 게 왠지 눈치가 보인다. 전기장판을 깐 뜨끈한 아랫목에서 엉덩이를 지지며 술 마시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마침 포항시 남구 도구리에 위치한 오래 된 양조장 ‘동해명주’에서 새로운 막걸리를 출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삼국유사> 속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를 모티브 삼아 만든 ‘연오랑 막걸리’와 ‘세오녀 막걸리’가 주인공이다. 최근 한 가장 탁월한 선택은 동해명주에 전화해 주문한 것이다. 이 두 막걸리는 한병당 1000원대인 일반적인 저가 막걸리와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일단 알코올 도수부터 차이가 났다. 세오녀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 연오랑 막걸리는 무려 12%에 달한다. 큰 잔에 가득 따라 놓고 천천히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야 하는 쌀 와인에 가깝다. 세오녀의 소비자가는 2000원대, 연오랑는 4000원대다. 투명한 플라스틱병에 든 모양새도 여느 막걸리와는 달렸다. 걸쭉해 보이지 않았다. 우유와 두유를 섞어 놓은 듯한 질감과 뽀얀 색깔이 돋보였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마시는 서늘한 막걸리의 풍미는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상상도 못 한다. 걸쭉한 느낌 없이 깔끔하고 담담하게 입안으로 넘어가는 질감, 감미료를 일절 넣지 않아 부담스러운 단맛은 좀처럼 찾을 수 없는 풍미, 포항 쌀에서 오는 은근한 향 등 애주가들의 입맛을 만족하게 할 궁극의 막걸리였다.
음식들을 죄다 끌어다 안주 삼아 마실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홈술’의 최고 장점 아닐까. 오전부터 끓이기 시작한 뜨거운 닭곰탕 한 그릇, 어제 먹다 남은 충무김밥의 오징어무침을 필두로 냉동 만두, 떡갈비구이에 매운 라면까지 안주의 행렬이 이어졌다. 과음과 과식이야말로 혼자 마시는 술의 백미다.
술 잘 만드는 양조장이 언제나 소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감, 완벽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특유의 선한 강박, 원재료에 대한 뚝심 등 양조하는 이의 다양한 성향들이 잘 버무려지기 때문이다. 막걸리 한 잔 속에서 무뚝뚝한 경상도 친구의 따뜻한 뚝심을 만났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