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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절반의 존재

등록 2020-03-18 21:12수정 2020-03-19 15:08

[3월 손가락 소설-배명훈 작가]
끔찍한 비행기 사고로 크게 다친 지하임
반만 로봇이 된 그는 나의 유능한 직장 동료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만나기로 약속했다며 같이 가자고 해

부모 앞에서 3시간 달려 자신을 보여주려 노력한 그

“잘했어요. 최고였어요”…함께 깔깔대며 웃은 우리

일러스트 윤수훈
일러스트 윤수훈
“사고가 있었어요. 아주 끔찍한 사고. 비행기가 추락했고 사람이 많이 죽었죠. 저도 몸의 반을 잃었고요.”

지하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사건 이야기를 직장 동료에게 전하듯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말투였다.

“너무 남 이야기하듯 말해서 좀 그렇죠? 기억이 전혀 없으니까요. 물론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상세하게 알고 있어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뿐이에요. 직접 기억하는 일도 아니고요. 아무튼 그 사고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신체의 잃어버린 절반을 기계로 바꾼 거죠. 별로 특이한 일도 아니죠?”

나는 지하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말문이 막혀버린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지만, 애초에 숨길 수 있는 당혹감은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내뱉었다. 계속 이야기하라는 의미였다. 지하임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리고 묻지도 않으셨는데 먼저 이런 말 꺼내서 죄송해요. 우리도 이제 친구가 됐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어요. 사이가 가까워지면 묻지 않아도 언젠가는 답을 해야 하는 질문이라는 게 생기잖아요. 영영 안 물어보실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저도 고마워요.”

하지만 지하임의 존재는 그렇게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의 반이나 그 이상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야 흔했지만, 지하임의 경우는 정말로 특별했다.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사람이라고 하기는 그렇잖아. 내가 특별히 편견이 있는 게 아니라.”

회사 동료들은 그렇게 말하며 지하임을 경계했지만, 나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사람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일 처리가 기가 막히게 깔끔한데. 게다가 지하임은 나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지하임은 최상급 번역자였는데, 그 무렵의 나는 지하임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야 있겠지만 그 속도로 일을 끝낼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지하임의 존재 양태를 정의하는 일 같은 것은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일 아닌가. 고객이 의뢰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먼저 찾아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게 지하임에 대한 내 입장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반년 전 맨 처음 사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보다 한층 대하기가 편해진 지하임이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금요일 퇴근 시간 직전이었다.

“저 내일 부모님 만나러 가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얼굴에서 다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반년 만에 느끼는 당혹감이었다. ‘역시 이 관계는 대충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지하임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기를 바라며 머뭇머뭇 입을 뗐다.

“부모님이 있었군요.” 멍청한 말이었지만 그렇게밖에 반응할 수 없었다. 지하임은 내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지하임은 앉는 것을 좋아했고 그 의자를 특히 편하게 여겼다.

“네, 부모님이 있었죠. 두 분 다, 뵙는 건 몇 년 만이에요.”

“왜요?”

“가정파탄이라고 해야 하나. 제 사고 때문에요. 두 분은 이혼하셨고, 저하고도 만나지 않으시고, 세 식구가 뿔뿔이 흩어졌어요. 남남으로. 저는 별로 슬프지 않으니까 위로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것도 그 사고처럼 아무 감회가 없거든요. 그래도 책임 같은 건 느끼고 있어요. 지하임이라는, 저의 존재에 대해서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인 건 맞잖아요.”

나는 하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하임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지하임이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마찬가지로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어쩐지 만족스러워 보이는 몸짓이었다. 우리는 친구니까.

사고 이전의 일은 기억도 없고 감흥도 없다는 지하임에게도 부모님과의 만남은 결정적 장면인 게 분명했다. 묻고 답하는 일을 더는 뒤로 미룰 수 없게 된 시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문답이든 자문자답이든.

지하임이 본격적으로 고민을 쏟아냈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건 아빠였어요. 병원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안세미씨는 외국 출장 중이어서 사고 소식도 늦게 들었고 병원으로 온 것도 훨씬 나중이었대요.”

“안세미씨는, 어머님?”

“네, 말하자면. 그런데 안세미씨는 어머니로 불리기를 거부하셨어요. 저를 인정하지 않으신 거죠. 아빠는 받아들인 셈이고요. 두 분이 헤어지신 건 그것 때문이었어요. 사실 두 분 말씀을 들어 보면 안세미씨 입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요. 아빠는 상황을 받아들인 쪽이 아니라 상황을 이렇게 만든 분이었거든요. 뒤늦게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던 건 안세미씨 쪽이었고요.”

“‘이렇게’라는 건?”

지하임이 손으로 자기 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렇게요. 사라진 부분을 기계로 바꿔서 살려냈다고요.”

“아.”

“몸이 반쪽밖에 안 남아있었어요. 나머지 반은 찾을 수가 없었죠. 아예 없어졌을지도 몰라요. 그냥 잃어버린 걸지도 모르고요. 비행기에서 떨어졌으니까. 하여간 그때 이야기는 말로 하면 너무 끔찍해져요. 저는 아무 감흥도 없는데도요. 아무튼 그 남은 반을 아빠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어요. 바지를 알아봤거든요.”

“저런.”

“아빠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도 있고요. 그랬을 거라고 봐요. 너무 이상한 결정이었으니까. 남은 반을 살리기로 한 결정 말이에요. 보통 이쪽 반은 안 살리니까.”

“그렇죠.”

“비이성적이지만 그렇다고 틀린 결정은 아닐 거예요. 그 비이성적인 사랑이나 상실감을 근거로 내린 결정일 테니까. 하지만 안세미씨는 그렇게 살아난 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상반신이 기계로 대체된 절반의 자식이라니. 더 끔찍한 게 뭔지 아세요? 저한테는 지하임의 기억이 없었어요. 그래서 초면에 멀쩡하게 안세미씨에게 말을 건넸죠.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지하임의 남은 반쪽은 아직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잃어버린 반쪽을 대체한 기계는 술술술 말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얼마나 싫었겠어요. 괴물 같지 않았을까요? 딸의 신체를 강탈한 기계 괴물.”

나는 누가 봐도 기계로 보일 지하임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체가 로봇이고 하체가 사람인 매우 희귀한 안드로이드.

“그래도 그,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 원래 지하임씨와 전혀 다른 인격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시죠?”

“저요? 그럼요. 저를 만든 사람들도 최대한 원본을 흉내 내려고 노력했겠죠. 그런데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존재의 본질이 어디에 깃들어 있나 하는 문제였죠. 상반신일까요, 하반신일까요? 안세미씨가 오열할 때 그분 눈이 향한 곳은 제 다리였어요. 인간 지하임의 남아있는 절반이요. 그러면서도 하반신에 인간 존재의 본질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죠. 즉각적이고 단호한 판단이었어요. 눈물을 닦고, 실험실인지 병실인지,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안세미씨가 아빠한테 소리쳤어요. 왜 저런 흉물을 달아놨냐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흉물 아니에요!”

나는 다행히 가장 빠른 타이밍에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반사신경으로 한 일이었다. 지하임은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는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평생 모르는 일로 하고 살아가도 그만이죠. 지금의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저는 그냥 잘 살 거예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이건 언젠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거든요. 내 존재의 본질에 관한 물음이니까. 오래 생각해 봤는데, 지하임에게는 그 두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겠더라고요.”

“그렇겠죠, 아무래도.”

“네. 제가 먼저 두 분께 연락드렸어요. 만나자고. 그래놓고는 오후 내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거 있죠. 그래서 부탁드리려고요. 괜찮으시면….”

“같이 가줄까요, 내일?”

지하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벅찬 얼굴이었다.

세 사람의 재회는 드라마처럼 극적이지는 않았다. 지하임의 부모는 서로 30미터쯤 떨어져 앉아 있었다.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의 관중석 위였다. 나는 안세미씨로부터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앉았다. 지하임의 아버지는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운동장 둘레에는 주황색 육상 트랙이 깔려 있었다.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트랙을 돌았다. 방향은 같았지만, 속도는 저마다 다 달랐다.

그중 한 사람, 눈에 띄게 잘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트랙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지만,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로봇이구나.’ 그러고는 다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로봇은 운동을 안 해도 되잖아!’

지하임은 운동선수처럼 달렸다. 아니, 지하임의 두 다리는 실제로 육상선수의 다리가 맞았다. 숨이 차지 않는 기계로 된 상체 때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지하임처럼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내딛는 지하임의 한 발 한 발은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넓은 보폭과 폭발적인 힘, 그리고 강인한 지구력.

사람이 달리는 광경이라니. 신기할 게 하나도 없는 장면이었지만, 저렇게 달리는 존재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그것은 순수한 경이로움이었다. 단순하기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압도적인 탁월함 같은 것.

회사에서도 지하임은 그런 사람이었다. 늘 부지런하게 사무실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친구. 직접 가서 확인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맨 먼저 현장에 가 있는, 흔히들 말하는 발로 일하는 전문가.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까지도 금방 활기차게 만드는, 기분 좋은 존재감을 지닌 이.

지하임의 부친이 살려내기로 한 것은 지하임의 그런 존재감이었을 것이다. 저런 경이로운 질주를 10년 넘게 보아온 부모라면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안세미씨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하임은 한사코 자신을 부인하는 안세미씨에게 무력시위를 하듯 달리고 있었다. 남아있는 내가 따님의 본질이 아니어서 미안합니다. 뇌가 아니어서 죄송해요. 두 다리일 뿐이어서. 어쨌거나 나는 살아남아 버렸고, 이 두 다리로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어요. 상체를 차지한 나는 나대로 인생을 살아갈 거고 당신에게 발이 묶이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두고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 보잘것없는 절반의 존재로부터, 나는 지하임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지하임이 남긴 절반은 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세요! 이렇게 굉장하잖아요. 이게 지하임이라고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든. …이라는 의미가 담긴 매우 과격한 항변.

나는 그렇게 상상했다. 안세미씨의 표정을 살피지는 않았으니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하나만은 분명했다. 우리 세 사람은 세 시간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지하임 또한 세 시간 내내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후 한때를 함께 보냈다. 그림자가 실없이 길어져, 단단히 숨겨둔 각자의 감정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져 내리기 직전까지.

텅 빈 운동장에 혼자 앉아 있는 지하임에게로 다가가면서 내가 말했다.

“두 분은 귀가하셨어요. 따로따로. 별말씀은 없으셨고요.”

“그럴 것 같았어요.”

“잘했어요. 최고였어요.”

“고마워요.”

“저, 그런데 괜찮겠어요? 마사지라도 해 드릴까요?”

그러자 지하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주시면 평생 은인으로 모실게요. 사실 저 지금 진짜 한 걸음도 못 걷겠거든요.”

우리는 목을 젖히고 깔깔대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배명훈(작가)

※‘손가락 소설’은 콩트보다는 길지만, 단편소설보다는 짧은 글로, ESC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립한 소설 개념입니다. ESC는 매달 한편씩 ‘손가락 소설’을 싣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초대 글쓴이는 배명훈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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