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토 3 슌야’ 디너 오마카세. 사진 백문영 제공
날씨는 분명 봄인 것 같은데 봄 같지도 않은 요즘이다. “이게 다 전국을, 전 세계를 뒤흔드는 역병 때문이다.” 원망 섞인 말이 입버릇처럼 자꾸 나온다. 모임이란 모임은 죄다 취소되고, 친구들과 먹고 노는 자리도 절반으로 줄었다. ‘이렇게 심심하게 살 수는 없다’며 집 밖으로 나설 때는 일회용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맨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아무래도 꺼려진다. 그렇다고 혼자 매일 ‘만 원의 행복’을 찾는 것도 지겨운 이 양면적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나들이가 오랜만이어서 그랬을까. 갑갑한 마스크 때문일까. 일정의 절반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간만에 서울 강남 나들이. 한적하고 여유롭게 배 채울 곳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은 지하철 양재역 인근의 ‘슈토 3 슌야’였다. ‘슌야’나 ‘슈토 3’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좀체 찾아보기 힘든 콘셉트의 사케(일본술) 바(bar)다. 양재역 인근에는 총 3개의 ‘슈토’가 있다. 이 중에서 ‘슈토 3’을 찾은 이유는 단순하다. 집에서 ‘혼술’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와 한적함이 좋아서다. 사케 바라고 해서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곳은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1인당 5만5000원)의 디너 오마카세(주인이 알아서 음식을 주는 방식)를 먹을 수 있는 데다가 밤 9시 이후에는 간단한 단품 안주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고가의 일식당 코스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은 ‘슈토 3’만의 경쟁력이다.
따뜻한 일본식 달걀찜과 ‘오늘의 사시미’로 시작하는 코스 출발점에서 주류 목록을 펼쳤다. 30여종이 넘는 사케 목록을 보고 있으려니 눈앞이 즐거움에 아득해졌다. ‘음식에 맞는 사케 페어링도 가능하다’는 말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기름이 한껏 오른 겨울 끝물의 방어, 유자 껍질을 갈아 얹은 쫀득한 무늬 오징어, 쫀득한 참치와 녹진한 성게알, 초절임한 고등어 등 접시는 충격적으로 고소했다. 이후 등장한 훈제 굴, 도미구이, 복어 튀김, 덮밥 같은 음식들은 사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감탄을 연발하며 먹었던 기억은 있는데, 술이 음식을 부르고 음식이 또 술을 부르다 보니 걷잡을 수 없는 황홀한 기분에 빠졌던 것만 생각난다.
음식과 술의 맛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을 때의 기쁨은 남다르다. 좋은 동반자를 만난 듯하다. 이런 즐거움과 호사를 더 자주, 많이 누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벌고 훨씬 열심히 일해야겠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