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낚시’를 하고 있는 김선식 기자.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금도 선합니다. 낚시가 취미였던 부친은 어린 저를 데리고 강에 자주 가셨습니다. 전 꼬물꼬물 몸을 비트는 지렁이를 뾰족한 바늘에 무자비하게 꽂았더랬지요.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고, 지루해진 전 지렁이처럼 몸을 배배 꼬면서 보챘답니다. 이제 이승에선 더는 아버지와 낚시 여행을 갈 수 없습니다. 릴을 감던 아버지의 하얀 팔뚝이 지금도 보고 싶습니다. 더러 부재는 채울 수 없는 그리움을 동반한 추억을 소환합니다. 낚시는 제겐 그런 겁니다. 저와 같은 이들이 많겠죠? 소일거리가 드물던 1970~80년대 낚시는 아버지들의 ‘최애’ 레저였으니까요. ‘아버지’와 ‘낚시’는 동의어입니다.
문득 한반도에서 낚시는 언제부터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회 문화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었지요. 회를 먹기 위해선 생선부터 잡아야 합니다. 낚시 말입니다.
날생선을 먹는 식문화가 거의 없는 서양과 달리, 우리와 일본은 꽤 오래전부터 회를 먹었답니다. 회를 즐긴 공자에 대한 언급이 <논어>에 있지만, 중국은 송나라 이후 회가 식탁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중식이 지지고 볶고, 찌는 방법에 매진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겠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달랐습니다.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기록이 많습니다. 고수 낚시꾼에 대한 언급도 있지요. 조선시대 최고는 정조였답니다. 정조는 혼자 수십마리도 너끈히 잡았다는군요. 먼바다나 강보단 궁 연못에서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답니다. 그는 한 마리도 못 잡은 신하에게는 벌을 주기도 했는데, 주량과 상관없이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게 했답니다. 애주가야 벌이 상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아주 고약한 일이죠.
낚시 얘기를 하다 보니 배가 고파집니다. 지난주 ‘나 홀로 낚시’를 하고 온 김선식 기자에게 물었지요. “잡은 물고기는 매운탕으로?” “풀어줬어요. 루어낚시는 웬만하면 잡은 물고기를 풀어줄 것을 권장합니다. 낚시의 재미는 릴을 감을 때 설렘과 기대, 잡을 때 손에서 느껴지는 생명체의 진동을 감지하는 것이죠.” 허기로 출발한 얄팍한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 뺨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 김 기자가 고른 ‘나 홀로 낚시 여행’을 추천합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