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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만두 만만세

등록 2020-05-20 20:03수정 2020-05-21 02:08

‘킹수제만두’의 ‘고기새우 군만두’. 사진 백문영 제공
‘킹수제만두’의 ‘고기새우 군만두’. 사진 백문영 제공

식도락이 인생에서 중요한 이가 절망에 빠질 때는 먹을 게 없는 날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을 때다. 뭘 먹어도 즐겁지 않고, 딱히 마시고 싶은 술도 없는 날, 그런 날엔 ‘어디 고장 난 것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난다. 그런 날 나는 습관적으로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하지만 금세 후회가 몰려온다. 냉동식품으로 배를 채우는 일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일단 무작정 뛰쳐나왔다. 분식집에 가긴 싫었다. 고급 정식도 부담스러웠다. 국수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메뉴는 만두. 고기와 각종 채소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데다 어떤 만두 전문점을 가도 실패할 확률이 적은 메뉴가 만두다. 평양냉면집의 이북식 왕만두도, 분식집의 꼬마 만두도 모두 맛나다. 그 다채로운 모양과 크기만큼이나 만두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구 신설동으로 향했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신설동역 바로 앞에 있는 ‘킹수제만두’의 외관은 굉장히 허름하다. 대림동 중식 먹자골목인 듯, 우리식 분식집인 듯 간판은 영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왠지 ‘이곳은 맛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기새우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 만둣국 같은 메뉴부터 ‘마파두부덮밥’, 목이버섯 계란덮밥 같은 중식 메뉴까지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알찬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고기새우 군만두’와 ‘마파두부덮밥’을 주문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를 덧입힌 것 같은 군만두를 베어 물었다. 뜨거운 육즙에 입술이 델 듯할 때 차가운 맥주를 들이켰다. 남이 제대로 구워준 군만두만큼 맛있는 게 또 있을까? ‘마파두부덮밥’도 여느 중국집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맵고 얼얼한 산초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맵고 뜨거운 맛과 보들보들한 두부의 식감은 이율배반적이다. 육즙이 줄줄 흐르는 군만두와 ‘마파두부덮밥’을 함께 먹은 뒤 마시는 맥주는 그 어느 때보다 달고 시원했다.

먹고 마시는 게 지겨울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마음의 문제다.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뭐든 먹을 궁리를 하다 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먹고 마시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한 끼는 소중하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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