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열흘간 포르투갈을 여행한 적 있습니다. 찬란한 날들이었죠. 어디를 가도 반기는 자연이 있었고, 옆집 언니 같은 이들이 말을 걸었지요. 다정했습니다. 발가락 앞까지 밀려오는 웅장한 대서양 파도는 설사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유혹이라도 빠지고 싶었습니다. 다시 오겠노라고 결심했지요.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맹세했어요. 나타(포르투갈식 에그 타르트) 주인과 “또 만나자”고 약속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이제 ‘그리운 나라’가 돼 버렸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여행 서점도 운영하는 1인 여행업자에게 일정을 의뢰했습니다. 그는 여행 기간 중 다녀야 할 곳들의 동선을 짜줬습니다. 기차표, 버스표 등도 예약해줬고요, 잠자리도 여러 버전으로 골라줬지요. 그야말로 비행기 표만 끊어 떠난 여행이었어요. 당시 신선한 여행 사업 모델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족감은 컸어요. 그는 당시 “소규모 개별 여행이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여행 문화를 바꿔 놓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그가 떠올랐습니다. 저 같은 이가 늘 겁니다. 단체 관광은 거의 사라지겠죠. ‘혼행’(혼자 여행)이나 지인들과 떠나는 소규모 여행이 뜨겠지요. 더는 낯선 이와 같은 데에 여행 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타인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거죠.
방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여행 가방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시큰거립니다. 폐기처분이 된 물건이 마냥 목 놓아 우는 것 같았거든요. 사람이라면 얼마나 슬플까요? 위로하는 심정으로 이번주 ESC를 준비했습니다. 여러 가지 가방에 대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업사이클 가방’이나 일명 ‘레고 가방’ 같은 게 있더군요. 가방들의 변신이었어요. 제 여행 가방도 그 대열에 올려 볼까 합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