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진작가 엘리엇 어윗은 ‘웃기는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벌거벗은 남자 앞에서 해맑게 웃는 여성 노인들이라든가, 깃발에 상체가 가려져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된 중년 남자라든가 하는 것들이죠.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피식 웃게 합니다. 폭염에 한 줄기 바람 같은 거죠. 레깅스처럼 옥죄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죠. 그런데 그의 여러 사진 중에 유독 1950년께 피츠버그에서 찍은 사진만은 웃을 수가 없습니다. 흑백의 사진엔 세면대가 두 개 있는데, 한쪽 벽엔 ‘화이트’(WHITE)라고 적혔습니다. 다른 쪽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짐작이 가시겠죠. ‘컬러드’(COLORED). 주홍글씨처럼, 어둠의 주술처럼 진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 아래 흑인 남자가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진입니다. ‘웃긴 세상’을 표현한 거죠. 최근 인종 갈등으로 촉발된 미국의 폭동이 이 사진 한장에 있습니다. 자그마치 70년 전 사진입니다. 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거죠? 왜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 거죠?
저부터 반성하렵니다. 레깅스는 몸을 조여 불편할 거라는 제 편견을 말이죠. 이번주 ESC는 인왕산을 오르는 레깅스족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그들의 얘기로는 레깅스가 숨이 막히지만은 않는다는군요. 어쨌든 전 레깅스를 입을 순 없지만, 인왕산에는 오를까 합니다. 사진기를 들고 엘리엇 어윗의 작품 같은 걸 만들기 위해서요. 독자님은 이번 주말 어디로 가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