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우리들의 완벽한 술집

등록 2020-06-11 09:14수정 2020-06-11 09:26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옥타’. 사진 백문영 제공
‘옥타’. 사진 백문영 제공

오랜만의 강북 나들이였다. 폭염주의보 전의 서울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걷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지긋지긋한 마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았을 날이었다. “술이나 마시고 헤어지자”고 제안한 이가 나였는지, 친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지나 경의선 숲길 공원을 걷다 보면 연남동이 나온다. 연남동을 걸어 다니는 사람 중 우리가 가장 나이 든 것만 같아 위축되었는데, 그런 기분도 잠시였다. 푸릇푸릇한 청춘들을 보고 있노라니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고, 연남동에 있는 술집이 ‘옥타’가 생각났다.

5년 전, 처음 옥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한 자리를 지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워낙 부침이 심한 상권이다. 소비자들의 기호는 늘 바뀐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세태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늘 어두운 조명을 켜고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그대로였다. 잊을 만할 때 한 번씩 들러 위안을 얻고 가는 그런 곳이었다. 이렇게 작고 소담한 일본식 선술집을 사람들은 ‘심야 식당’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식의 허울을 옥타에게 붙이고 싶지 않았다.

음식 2~3가지를 놓으면 꽉 차는 조그마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친구와 마주 앉았다. 이곳의 메뉴는 단출하고 정갈하다. 튀긴 가지 위에 양념간장을 얹은 ‘아게다시나스’, 닭튀김, 수제 군만두인 ‘테즈크리교자’, 야끼소바 등 일본 선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이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을 파는 곳을 찾기란 의외로 어렵고, 맛있는 집은 더 드물다. 많은 백반집 중 밥이 맛있는 곳을 찾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술 종류도 다양하다. 보리소주, 고구마소주, 매실 술, 청주는 물론이고 하이볼 등 칵테일의 가짓수도 많다.

‘옥타’의 음식들. 사진 백문영 제공
‘옥타’의 음식들. 사진 백문영 제공

아게다시나스와 닭튀김을 주문했다. 달콤한 매실 술과 고구마소주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면서 그 옛날의 기억들을 꺼냈다. 바로 튀겨 나오는 가지 튀김과 닭튀김은 예상대로 적당히 맛있었고, 아주 뜨거웠다.

‘완벽한 술집’이라는 것은 전설의 유니콘 같은 관념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타는 다르다. 적당히 맛있는 음식, 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술, 편안한 분위기, 그 옛날 추억까지, ‘우리의 완벽한 술집’이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