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신이 나서 동으로, 남쪽으로 떠날 계획을 세울 때다. 이 계절이 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제주도에도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앞뒤 잴 것도 없이 따라나섰다.
관광객이 많기로도 유명한 제주도 애월읍에는 제주산 감귤과 꿀로 와인을 생산하는 ‘제주허니와인’ 양조장이 있다. 애월읍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을 달려 고즈넉한 와이너리에 닿았다. 제주 감귤과 꿀로만 만드는 와인은 외국 와인에 길든 내 입맛을 바꿔 놓을 만했다. 감귤 특유의 상큼하고도 쌉싸름한 풍미와 산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대낮에 시작한 술타령은 초저녁까지 이어졌다. 어차피 실컷 먹고 마시기로 다짐하고 온 터였다. 제주 땅에서 생산한 와인을 마셨으니, 제주의 떼루아를 그대로 담은 음식이 먹고 싶었다. 애월읍에서 20여분 정도 달려 서귀포시에 위치한 ‘바다마르마레’에 도착했다.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던 스페인 레스토랑 ‘숲으로 간 물고기’의 주인장이 작심하고 제주에 문을 연 레스토랑이다. 서울의 레스토랑을 그대로 옮겨온 듯 편안하고 아득한 분위기에 섬 특유의 고즈넉하고 한적한 느낌이 더해져서 찾은 이를 즐겁게 했다.
‘바다마르마레’의 우도 땅콩을 얹은 금귤 피자. 사진 백문영 제공
제주도 현지에서 나는 토마토, 루콜라 같은 채소는 물론 셰프가 직접 앞바다에서 잡은 삿갓조개 같은 해산물까지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한다는 메뉴판이 믿음직했다. 제주산 멸치를 올리브오일과 마늘에 절인 안초비 샐러드로 음주로 무뎌진 입맛을 일으켰다. 직접 만드는 따뜻한 식빵을 소스에 찍어 먹고 허니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손가락보다도 큼지막한 멸치를 가득 얹은 ‘멜 피자’와 우도 땅콩을 얹은 금귤 피자 역시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마지막 메뉴는 제주 구좌읍에서 직접 수확한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차가운 면과 비빈 토마토 파스타였다. 지금 제철을 맞은 토마토는 고소하고 새콤했다. 질 좋은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린 면에 소스가 가득 스며든 스페인식 비빔면이었다.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지만, 기대한 수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은 적다. ‘바다마르마레’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제주도의 모든 것을 씹어 삼킨 것만 같아 뿌듯했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