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화의 종말>이 교보문고 8월 인문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지요. 25년간 장수를 연구한 저자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노화도 질병이라고 일갈하며 치유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불가역적 영역으로 취급되던 노화, 그저 순응하는 게 능사라는 노화가 새로운 트랙에 올라탔군요. 과거의 저라면 “맞다! 내 생각과 같다”고 박수를 쳤겠지만, 진짜 ‘노화의 종말’은 늙음을 인정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는 데 있다고 여기는 지금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네요.
몸과 마음에서 젊음이 쫓겨나려 할 때마다 안간힘 다했던 수많은 ‘노오력’들. 부질없더이다. 제 맘에서 ‘은교’가 사라지고 현명한(?) ‘이적요’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하여간 젊음의 뒤꽁무니가 안개에 묻히듯 옅어지면서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서서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최근에 가장 눈에 띈 건 영화 <69세>입니다.
일흔을 앞둔 주인공 효정은 성폭행을 당합니다. 가해자는 29살 남자입니다. 효정은 처벌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놓인 생물학적인 숫자 ‘40’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조롱거리로 만듭니다. 사회는 성폭행의 개연성을 의심합니다.
노인학에서 여성 노인의 성은 여전히 어둑한 숲의 이끼처럼 닿기 어려운 고찰로 보입니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비친 주인공 효정에게서 전 시간을 단단하게 머금은 찬란한 숲의 강인함을 봤답니다. 수백년 살아온 숲의 나무 말입니다. 이번 주말엔 <69세>를 보고, ESC가 준비한 ‘대한민국 치유의 숲’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둘은 닮았습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