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을 자주 하면서 식당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와 음식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보기에 그럴싸한데, 접시에 담은 식재료는 그만도 못하다든가 그저 맛있게 느껴지게끔 하는 데만 주력한 음식을 마주칠 때마다 심사가 꼬였다. 문제는 이런 식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어김없이 구원자(?)가 나타났다. ‘씹고 맛보고 즐기는 일’엔 대가인,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소박하게도 간짜장인 묘한 양반이다. 그가 “너의 고민을 해결해주겠어”라며 데려간 곳은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노포(오래된 가게) 식당 ‘대성관’이었다. 1940년대 문을 열어 지금까지 똑같은 음식을 같은 자리에서 팔고 있는,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이다. 대성관은 넓은 대로변에 있어 눈에도 잘 띈다. 안에 들어가면 중국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하다. 비닐 장판을 깐 식탁도, 만질만질한 낡은 나무 의자도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설었다.
메뉴판의 위용은 남달랐다. 글씨가 많이 지워진 낡은 종이 메뉴판은 세월을 그대로 담은 듯했다. 도대체 ‘오향장육’ 가격표에는 왜 ‘시가’라는 말이 적혀 있을까? 시가면 도대체 얼마일까? 호기심은 덤이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오향장육부터 난젠완쯔, 간짜장, 군만두, 탕수육까지 한꺼번에 주문하고 독한 술도 추가했다. 청요리에 백주는 거부할 수 없는 공식이자 진리니까.
두껍게 채 썬 양배추가 깔린 오향장육은 고추기름과 다진 마늘이 잔뜩 올라간 도톰한 아롱사태가 맛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향긋한 차를 마시는 듯 은은한 향신료가 입안을 휘감은 뒤 매콤한 마늘 맛이 달려들었다. 아삭한 양배추마저 끼어들었다. 난젠완쯔도 마찬가지였다. 어른 손바닥만 한 고기 산적을 지지듯 튀긴 후 매콤하고 달콤한 소스를 뿌렸다. 동그랑땡도 아니고, 햄버거 패티도 아니고, 산적도 아닌 이 덩어리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단단한 튀김옷 안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고기 맛 때문에 술잔을 계속 독촉했다. 간짜장은 쫀득하지만 미끄덩거리지 않는 탄력 있는 면발이 자랑이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와 큼지막한 돼지고기의 맛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조금 허름하면 어떻고, 덜 세련돼 보이면 어떤가? 탄탄한 기본기에서 느껴지는 신뢰감과 충실한 식재료 선택, 제대로 된 조리법 등 이곳이야말로 식당의 기준이 되고도 남는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