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주조의 와인과 잘 어울리는 부안 음식. 사진 백문영 제공
코로나19 상황이 좀 나아졌던 몇 주 전, 전라북도 부안으로 술 기행을 떠났다. 비옥한 땅에서 생산하는 기름진 쌀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한 곰소 젓갈, 서해 개흙에서 나오는 신선한 백합과 바지락까지 부안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하다. 하지만 맛난 것을 뒤로하고 달려간 곳은 양조장 ‘동진주조’.
‘쌀이 유명한 지역이니 막걸리를 만들겠거니’ 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양조장 가득 쌓여 있는 와인병에 놀랐다. 세련된 병 라벨 디자인에 또 놀랐다. 동진주조는 오디(뽕나무 열매)로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다. 막걸리를 주로 만들다가 몇 년 전부터는 청주와 와인도 만들고 있다. 국내 양조장치곤 독특한 술을 만든다는 소문에 술꾼인 나는 단박에 달려갔다. “예로부터 부안에는 누에를 양식하는 곳이 많았고, 누에의 주식인 뽕나무밭이 많았다.” 양조장 주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오디가 재료인 게 이해가 됐다.
오디로 빚은 와인 맛이 궁금했다. 주섬주섬 잔을 들어 시음을 시작했다. 짙은 보랏빛 루비 빛깔은 오디 특유의 색이고, 향 역시 그랬다. 달곰하면서도 쌉싸래한 향이 올라왔다. 맛 또한 그랬다. ‘맛이 달다’란 생각이 들 때쯤 부드러운 나무 향이 올라왔다. 씁쓸하면서도 묵직한 오디의 맛이 여운으로 남았다. 1977년부터 술을 빚은 막걸리 양조장이 와인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모험이었지만, 와인 애호가 입장에서는 한국 와인의 품질을 스스로 증명하는 듯해서 뿌듯할 따름이었다.
그 지역에서 만든 술은 역시 그 지역의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 곰소항에서 산 바지락 젓갈에 ‘부안참뽕와인’ 한 잔, 숙소로 들어오면서 주문한 백합찜에 또 한 잔, 그리고 또다시 밥과 전라도 김치에 한 잔…. 끊임없이 술이 들어가는 밤이었다.
다행히 한국 와인은 ‘전통주’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전통주는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다. 집 밖에서 술을 마신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볼멘소리 따위는 필요 없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주문하면 된다. 집 밖에서 술 마시는 게 눈치 보이는 시절이다. 어차피 마셔야 할 술이니, 이 시대가 낳은 새로운 알코올 문화를 즐겁게 탐하는 것도 방법이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