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반찬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한우부터 바삭하게 구운 돼지고기, 뜨거운 기름에 튀겨낸 치킨과 꼬치에서 쏙쏙 빼 먹는 재미로 먹는 양고기까지, 고기 종류부터 조리 방법까지 가리지 않고 탐닉했다. 지금은 좀 다르다. 각종 생선과 제철 해산물이 고기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경우를 본다. 제철 맞은 대방어, 겨울의 황제 석화, 즐거운 날에 먹는 참치, 콤콤하게 잘 삭힌 홍어, 해풍에 정성으로 말린 청어 과메기 같은 바다 음식들이 유난히 애틋하다.
해산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이 계절에 갈 만한 식당 중 하나가 지하철 압구정역 인근에 있는 ‘보타르가’다. ‘이탈리아 현지식에 가까운 음식을 낸다’는 평을 들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라노’ 출신 셰프가 문을 연 곳이다. 보타르가는 숭어나 참치 알을 소금에 염장해 만드는 어란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상호를 듣자마자 어란 특유의 짭조름한 맛이 떠올라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곳의 ‘어란 캉파뉴’는 사연이 남달랐다. 전라남도 영암의 김광자 명인의 어란을 손톱 두께만큼 얇게 썰어 빵에 얹었다. 어란은 생선의 알을 참기름, 간장 등을 버무린 양념을 바르면서 바람에 말리는 음식이다. 우리도 어란을 먹었는데, 조선시대엔 임금께 진상했던 귀한 먹거리였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보들보들한 빵인 깡파뉴의 식감과 명인의 어란은 단짝 같았다.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 한 모금 마시고 종잇장처럼 얇게 썬 어란을 혀 위에 얹었다. 신맛과 짠맛이 입안에서 뒤섞이며 감칠맛이 폭발했다. 좋은 재료가 충실하고 정확한 조리법을 만났을 때, 먹는 즐거움은 극에 달한다.
생선이 재료인 음식을 내는 곳은 보타르가 말고도 많다. 그중에 독특하게 어만두가 있는 식당이 있다. 평상시에 자주 먹는데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그 면모가 바뀌는 음식을 꼽으라면 역시 만두다. 어만두는 생선살을 만두소로 사용하는 고급 음식이다. 연희동에 있는 ‘편의방’은 어만두가 대표 메뉴인 소박한 중국집이다. 커다란 삼치를 포 뜬 뒤 생선 가시를 손으로 하나하나 제거해 만든 어만두는 보드랍고 맛깔스럽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큼직한 어만두를 먹으면 고기에만 육즙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속을 가득 채우는 기름진 삼치의 즙은 비린 맛이 전혀 없고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향만 스친다. 어만두도 조선시대 때 귀했던 우리 음식이다.
전혀 다른 음식인 ‘어란 깡빠뉴’와 어만두에서 해산물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