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주 객원기자가 뜬 스웨터.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손끝에서 자주 미끄러지는 미래 때문에/ 또 한번 낙담하거나,/ 겨우 입안에 넣은 희망이/ 삼켜지지 않고 들러붙더라도/ 또다시 고개 떨구지는 말자.’
인생의 고난과 희망을 노래하는 듯한 이 시는 제목이 뜻밖입니다. ‘들러붙더라도’에서 힌트를 얻을 순 있습니다. 주로 입천장에 붙어 꿈틀거리는 먹거리로는 낙지가 꼽히죠. 낙지는 실제 매우 영리해서 살이 뜯기고 삼켜질 때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누구는 외계에서 온 고등생물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소리도 하지요. 하지만 시는 낙지를 그런 존재로 다룬 건 아닙니다. 어쨌든 시 제목은 ‘낙지선생 분투기’. 이 시는 2013년 문학동네 시인선에 실린 시집 <쌍칼이라 불러다오>의 한 편입니다.
시인의 시엔 유독 먹거리가 자주 등장합니다. 비빔밥, 복껍데기무침, 보리굴비, 봄도다리쑥국, 밴댕이 등. 그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시인이 7년 전 이 시집을 내밀었을 때 놀랐어요.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까칠한 영업 대상을 잘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식품회사 직장인인 줄 알았던 그가 자신의 시집을 줘서요. 그는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었지요. 격무에 초라해진 제게 시집은 신선한 솜사탕이었죠. 그의 ‘다른 세계’가 부러웠어요.
요즘 그처럼 ‘나의 다른 세계’을 찾고 있습니다. 지루하면서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게으른 지금, 탈출구를 찾고 싶어서죠. 그런 이유로 이번주 유선주 객원기자가 뜨개질 관련한 기사를 보내왔을 때 기뻤습니다.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게 주업인 유 기자는 그처럼 ‘다른 세계’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건 뜨개질이더군요. 고요한 침잠에 몰입할 수 있는 취미로 뜨개질만 게 없다고 하네요. 부럽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아쉬워서 ‘쌍칼’ 시인의 시 ‘서산어보’ 중 한 구절을 옮깁니다.
‘마음이 기우뚱한 날 서해로 가면/ 바다는 수평이 맞지 않아 몸이 더 기울었다/…마음이 자꾸 옆으로 걷는 날이었고/ 허리를 구부린 채 살던 때였고/ 껍데기 안에 몸을 감추고 기던 날이었다.’ 그런 날 서해로 가보렵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