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식당 ‘더 셰프' 운영하는 마누엘 만자노가 만든 ‘제주 소까랏’. 박미향 기자
지난달 13일, 스페인 요리사 마누엘 만자노는 자신의 작은 식당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영업시간도 아닌데 말이죠. 제주산 딱새우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지요. 거친 껍질, 그 안에 통통하게 자리 잡은 탱탱한 살, 살에 붙어 있는 바다 향기 가득한 새우 머리 등을 어떻게 조리하면 최고의 맛을 낼까 하고 말이죠. 그의 앞엔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 몇 대가 버티고 있었지요.
껍질이 여느 새우보다 딱딱해서 까먹기 불편한 딱새우. 그저 국물 내는 용도로 썼던, 인기가 없던 딱새우가 식탁의 화려한 ‘선수’로 등극한 건 순전히 제주 이주민 덕입니다. 도시 탈출을 감행한 그들 입맛엔 딱새우가 아마존 공기보다 더 신선해 보였던 거죠. 바닷속에서 ‘딱’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건 뭐 단정 짓기가 어렵네요. 학명은 가시발새우입니다.
스페인 식당 ‘더 셰프'를 운영하는 마누엘 만자노 셰프. 박미향 기자
13년 전, 한국에 와 지금 효창공원 인근에서 ‘더 셰프’(The Xef)를 운영하는 그가 이날 딱새우로 ‘제주 소까랏’(Jeju Socarrat)를 만들고 동영상까지 찍게 된 건 올해 5회를 맞은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때문입니다. 본래 5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축제는 코로나19 때문에 10월부터 두달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지요. 유튜브 채널(JFWF)엔 그의 ‘제주 소까랏’ 조리법이 올라갑니다. 어려움에 부닥친 페스티벌에 도움을 주려는 거지요. 여경래(중식), 조희숙(한식), 조지프 리저우드(오스트레일리아) 등 요리사 10명도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주최 측은 코로나19에 점령당하지 않고 길을 찾자는 의지로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다른 해처럼 축제를 열기에는 환경이 엄혹했던 것이지요. 만자노 셰프도 코로나19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주최 측처럼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건 인간의 우월함이죠. 한편 사람은 환경을 스스로 바꾸기도 하지요. 이번주 ESC가 고른 이들, 오지살이에 나선 20·30세대가 그런 이들입니다. 그들은 도시를 버렸습니다. ‘탈출’이란 말은 굴욕적이죠. 제주 이주민이 딱새우를 세상에 소개한 것처럼 이들이 우리에게 펼쳐 보일 ‘그 무엇’이 궁금해집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