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싱글 몰트위스키 양조장. 사진 이대형 제공
전 세계에는 많은 증류주가 생산되고 있다. 수수 증류주인 고량주, 보리 증류주인 위스키, 포도 증류주인 코냑, 용설란 증류주인 테킬라 등, 물론 이 증류주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증류주가 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많이 마시는 증류주는 희석식 소주이다. 가격이 싼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만든 대중적인 술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증류주는 역시 위스키다. 위스키는 과거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고급 술집에서 마시는 술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이유로 위스키는 고급술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 지금도 해외로 여행 다녀온 이들의 선물 꾸러미엔 위스키 한 두병이 있기 마련이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위스키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부 국내에서 생산하는 위스키도 사실상 원액은 수입한 후 양조장 각자의 방식으로 브랜딩 후 판매하는 것이다.
위스키 수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876년, 개항 후 조선에는 다양한 서양의 문물이 들어왔다. 당연히 먹거리도 수입됐다. <한성순보>에는 수입 물품에 대한 관세 문제를 다룬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엔 ‘위스키’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다. 위스키가 아니라 ‘유사길’(惟斯吉)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브랜디는 ‘발란덕’(撥蘭德), 샴페인은 ‘상백윤’(上伯允)이라고 불렸다. 당시 일본도 위스키를 제조하지 못해 수입하던 터였다. 일본인들이 수입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영국·미국산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우리는 위스키 대부분을 수입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국산 위스키가 탄생한다. 1981년 오비씨그램, 베리나인, 진로위스키 등 3사에 정부는 위스키 제조면허를 부여했다. 정부가 위스키 제조에 박차를 가한 이유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문이었다. 국제 행사의 손님맞이 술로 전통주뿐만 아니라 국산 위스키도 포함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 술이 낯선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였다.
1982년 4월부터 국내에서도 몰트위스키 원액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1987년엔 국산 위스키 원액과 수입 위스키 원액을 섞은 위스키가 탄생한다. 진로의 ‘다크호스’와 오비씨그램의 ‘디프로매트’가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유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결국 1991년께 국내 위스키 원액 사업은 완전히 종료된다. 동시에 주류 수입의 문이 활짝 열렸다. 주로 수입되던 위스키 원액 대신 해외에서 만든 위스키들이 병째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위스키 업계는 지속해서 성장했다. 하지만 음주 트렌드가 고도주에서 저도주로 변하고 ‘혼술’이 많아지면서 위스키 판매는 급감했다. 비싼 술이라는 인식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추락하는 위스키 시장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는 다소 성장하고 있다. 싱글 몰트위스키는 다른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를 섞지 않고 한 증류소에서만 만든 것을 말한다. 고급 위스키로 취급한다.
그동안 위스키 생산은 국내 양조장 주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수입 위스키에 견줘 품질, 가격, 장기적인 투자 등에서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어려움이 컸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싱글 몰트위스키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지난 6월께 경기 남양주에 생겼다. 생산 설비를 영국과 독일에서 수입했다. 정통방식에 사용되는 위스키 증류기를 이용해 증류하는 것이다. 현재 증류를 한 위스키 원액은 오크통에서 잘 익고 있다. 2023년엔 이 업체의 위스키 제품을 맛볼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술이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위스키만은 예외였다. 위스키의 종주국은 스코틀랜드지만, 최근 일본, 대만 등에서 생산한 위스키가 국제 대회에서 상을 타는 등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가 탄생한 건 반가운 일이다. 3년 후에 만날 ‘메이드 인 코리아 위스키’를 기대해 본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