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랑 연애하나요?” 최근에 들었던 말 중 가장 신선했던 질문이다. 사랑의 정의가, 계속 생각나고 상대를 만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더 좋아지는 것이라면, 맞다. 나는 산과 사랑에 빠졌다. 아빠 따라갔던 지리산에서 처음 일출을 맞이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칠흑 같은 어둠을 몰아내고 떠오른 말간 해, 그 아래 첩첩 펼쳐지는 산 풍경.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은 너른 품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괜찮아”라고 말 건네며 포근히 품어주는 것 같았다. 비죽비죽 모났던 마음이 지리산의 품에서 둥그스름해졌다. 그렇게, 산이 내게로 왔다.
클린하이킹을 시작하게 된 곳도 지리산이다. ‘산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쓰레기를 줍는 클린하이킹 모임을 꾸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3년째 사람들과 즐거운 청소 중이다. 산은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동시에,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떠올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오랫동안 놓았던 붓도 자연스레 다시 들었다. 전국 명산을 다니면서 산을 그림으로 한 장씩 담기 시작해 이제는 60장을 채웠다. 화가라는 꿈을 실현해 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지리산에서 산악열차 건설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동군과 기획재정부가 추진 중인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다. 하동 화개, 악양, 형제봉을 거쳐 청학동까지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호텔 등을 건설하려는 대규모 사업 계획은 생태자연 1등급 지역에 구멍을 뚫기 위해 산지 활용 규제 특례까지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다. 우리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지리산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산을 사랑하는 18명의 러너, 하이커, 클린하이커들이 모여 ‘세이브 더 지리’(Save the jiri)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이야기를 알리고, 지리산을 지키고자 2박3일간 뛰고, 걷고, 청소했다.
‘세이브 더 지리’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이 자연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품에서 걷고 숲 향기를 깊이 들이마실수록 우리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매 순간 깨닫는다. 불현듯 반짝이는 영감을, 때로는 날카로운 교훈을 주기도 한다. 나 혼자 느끼기엔 아까운 것들이다. 연재 ‘산 네게 반했어’를 통해 그 생생한 느낌을 나누고자 한다. 산의 어떤 매력이 평범한 청춘을 산 사랑꾼으로 만들었는지, 방 청소도 게을리하던 사람을 산 청소 일꾼으로 바꿔놓았는지, 산 정상에서 붓을 든 화가로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아 궁금하다. 바람 좀 쐬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성공이다. 이 여행을 따라온 당신은 곧 산에 반해버릴 것이다.
글·그림 김강은(벽화가·하이킹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