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IT)문계’ 자화상. ‘잇(IT)문계’ 제공
수학을 국어보다 훨씬 잘했고, 심지어 매우 좋아했으며, 성적도 꽤 괜찮은 편이었는데, 왜 문과를 선택했을까. 지금도 종종 의문이 드는 제 선택입니다. 하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후회란 감정은 빨리 정산해서 빨리 이별할수록 남는 장사죠.
어쨌거나 문과생이 가득한 직장이 제 인생이 되었습니다. 제 일터는 이과생이 오히려 머쓱한 동네죠. 제가 딛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번주부터 격주 연재할 ‘재 너머 판교에서’의 필자 ‘잇(IT)문계’ 선생은 한국판 실리콘밸리 판교에선 반대라고 합니다. 봉건시대 계급구조로 치환하면 문과생은 맨 아래층쯤에 있다나요. 취준생 선호도 1위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 그 세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쳐보겠다는 ‘잇(IT)문계’ 선생의 각오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2의 장류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판교 아이티기업 근무 경험을 살려 쓴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작가 장류진 말입니다. ‘잇(IT)문계’ 선생의 글만 이번주 ESC를 빛내는 건 아닙니다. 목공에 빠져버린 송호균 기자의 술술 읽히는 나무 이야기는 네 편, 내 편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요즘 제가 빠진 책도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여행 준비의 기술>란 책인데요, 저자는 여행 준비의 즐거움이 얼마나 중요하지 설파합니다. 여행 기술도 아니고, 여행 잘하는 법도 아닌 ‘준비’에 시선이 단박에 꽂혀 빠져들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이과생인데 문과생 같더군요. 의대를 졸업했지만, 글을 쓰고 장편소설 저자가 되었더이다. 문과생, 이과생 따지는 게 우습더군요. ~생, 어디 출신, ○○졸업생 같은 게 파도치는 인생사에 결정적이진 않거든요. 이번주도 ‘ESC의 기쁨과 슬픔’에 빠져보시죠.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