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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변신 괴물들을 위한 금요일 모임

등록 2020-12-18 07:59수정 2020-12-18 08:16

점점 기계로 변하는 수윤
그런데 이게 다 망상이라는데
하지만 마냥 그런 것은 또 아니다
일러스트 백승영
일러스트 백승영

수윤의 왼팔이 기계로 변해있었다.

금속 뼈대 주변을 유압 실린더와 튜브가 감고 있었고, 그 주변에 은빛과 금빛의 작은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다. 가느다란 전선들이 투명한 피부밑에 붙어있었고, 군데군데 붙어있는 쌀알만 한 전구가 반짝였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톱니바퀴들이 찰칵찰칵 돌아갔다.

수윤은 팔을 뻗어 침대 옆 책상 위에 있는 화장 거울을 가져와 팔을 비추어 보았다. 기계 팔의 이미지가 반사됐다. 폰 카메라로 팔을 찍었다. 이번엔 멀쩡한 팔이 찍혔다. 침대에서 나와 팔을 움직였다. 왼팔이 살짝 무겁고 힘이 더 세진 느낌이었다.

느낌일 뿐이야. 망상증이니까. 하지만 망상증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같이 이야기하며 일한 누군가한테서 옮은 거야. 그건 회사 안에 한 명 이상의 변신 괴물이 있다는 뜻이다. 누구일까? 장은영 팀장? 한소미? 전형신? 박수정? 수윤이 만나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고 그들 중 변신 괴물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것 같았다.

회사에 출근한 수윤은 같은 사무실 동료들을 훑어보았다. 모두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사에 변신 괴물이 있을 거라고는 나도 생각을 못 했지. 아무도 변신 망상증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몰랐다. 그건 그들이 그렇게 대놓고 티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병이었지만 자기만 신경을 쓴다면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수윤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천천히 기계로 변해가는 게 느껴지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할 수는 없었다. 점심시간 때 기계는 왼쪽 심장을 집어삼켰고 퇴근 무렵엔 오른쪽 손가락들이 하나씩 변하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어진 수윤은 팀 A.I.에 접속해 하루 병가 신청을 했다.

변신은 다음 날 아침에 멎었다. 이제 수윤은 양팔과 가슴이 기계였다. 이게 끝일 리가 없었다. 기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숨을 고르고 있는 것뿐이다. 그 정도는 검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제와는 몸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호흡이었다.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고 산소가 10퍼센트 더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양손의 움직임과 감각 역시 훨씬 정교해졌다. 이게 말이 되나? 이 모든 건 망상일 뿐인데? 여기에 속아 넘어가 병이 생기거나 사고라도 치면 어떻게 하지?

흥분과 걱정이 뒤섞인 하루가 지나갔다. 날이 저물자 수윤은 아파트 건물 밑에 있는 쌀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아는 사람이 나왔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박수정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윤은 사정을 알아차렸다. 변신 괴물은 박수정이었다.

박수정은 수윤을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캄보디아 식당으로 데려갔다. 8인용 테이블이 있는 별실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박수정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변신 괴물이 맞다. 2년 동안 변신 괴물이었고 지금까지 건강은 좋다. 투명한 것처럼 보이는 피부는 곧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도 투명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한데, 변신 괴물이 되는 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가 망상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잖아요.”

수윤이 말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 눈에 우리 몸은 이전 그대로처럼 보이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자기 몸을 다르게 보고 느끼는 우리가 망상증에 걸렸다고 믿어요. 하지만 의사가 뭐라고 하건 우린 우리 몸을 다르게 느끼고 실제로 달라진 몸의 영향을 받아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요. 우리가 느끼는 몸은 저들이 보는 우리 몸만큼이나 진짜예요.”

“진짜라면 정말 이상한 기계예요. 오늘 전 제 팔의 기계장치를 분석해봤어요. 작동 자체는 논리적이에요. 하지만 비능률적인 기계지요. 톱니바퀴나 캠 대부분은 쓸모가 없고요.”

“피부가 불투명해질 무렵엔 최선의 디자인으로 개선될 거예요. 제 몸의 설계도 처음엔 말도 안 되었어요. 하지만 몸에 익숙해지는 동안 점점 더 단순하고 아름답고 명쾌한 구조로 바뀌었지요.”

박수정은 태블릿을 열고 2년 전에 기록한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수윤과는 달리 발밑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목까지 올라가자 기계는 최종 설계 수정을 했고, 결국 머리로 올라갔다.

“다들 기계로 변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움직이는 식물로 변하지요. 다른 동물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돌로 변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어느 나라엔가 있다고 들었어요. 우린 모두 기계지만요.”

“우리요?”

별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자 넷에 남자 둘. 모두 서른 안쪽으로 보였다. 박수정은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소개를 했지만, 수윤은 그 대부분을 잊어버렸다. 모두 개성에 살며 고만고만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그들은 지난 1년 동안 금요일 저녁마다 모여 같이 저녁을 먹었다. 처음엔 박수정과 안희경이라는 여자 둘뿐이었다. 지금은 일과 가정사 때문에 빠진 세 명까지 포함해서 10명이었다.

변신 괴물들이 모이자, 수윤은 드디어 이들과 보통 사람들과의 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박수정이 회사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는 몰랐던 변신 괴물들만의 특징이 있었다. 움직임이 더 우아하고 빠르고 단호했다. 눈 깜빡임이 더 갑작스러웠고, 종종 효율적이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관절을 사용했다. 몸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기계가 그들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었다.

수윤은 그들의 동작을 흉내 내보았다. 실제 몸이 할 수 없는 극단적인 건 없었다. 하지만 일단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망상 속 기계 몸의 가능성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흥분되지 않는 건 심장이 기계로 바뀌었기 때문인가? 아니야. 흥분은 뇌가 하는 거고 심장은 그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심장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흥분 역시 죽는 게 아닐까.

순식간에 별실 안은 시끄러워졌다. 다들 신입 괴물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변신 괴물이라는 걸 주변 사람에게 숨기는 법, 새로운 몸의 활용법 그리고 무엇보다 몸을 제대로 느끼는 법.

어느 누구도 망상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수윤이 무심코 그 단어를 내뱉으면 예의 바르지만, 단호한 반발이 돌아왔다. 존재하지 않는 가짜 몸을 망상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새 몸은 우리의 감각과 경험에 영향을 끼쳐요. 그렇다면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새로 생긴 심장과 폐와 팔을 느껴보세요. 그게 존재하지 않나요? 하지만 이 증상의 원인이 뭔지 아무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으세요?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의 음모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런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누가 우리를 마음 없는 군인으로 부리면 어떻게 해요? 그건 너무 옛날 SF적인 상상이네요. 그거야말로 망상이 아닐까요?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새 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의견은 하나로 합치지 않았다. 모임의 사람들도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외계인 기원 가설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둘이나 됐다. 단지 그들은 그 가설이 옳다고 해도 두려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신나게 떠들다 보니 벌써 밤 11시가 지나있었다. 수윤은 다음 금요일 저녁을 약속하며 식당을 떠났다.

주말 동안 기계는 다시 성장했다. 월요일 아침엔 양쪽 두 발을 남기고 하반신 전체가 기계로 변해버렸다. 팔과 가슴의 피부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피부는 수윤이 내부 기계의 구조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만 투명한 상태로 있는 것 같았다. 새로 생긴 다리에는 불필요한 톱니바퀴나 캠은 없었다.

병원에 갔다. 보험 때문에 2년에 한 번 신체검사가 있었고, 월요일이 그날이었다. 2시간 동안 24개의 테스트를 받았는데, 의사와 간호사 중 누구도 수윤의 기계 몸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그동안 수윤이 몸 관리를 잘했다고 칭찬했다. 지난 6개월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반대여야 할 텐데.

병원 근처 식당에서 전복 배양육으로 만든 튜브를 썰어 넣은 죽을 떠먹으며 수윤은 생각에 잠겼다. 이 속도라면 오늘 중으로 이 가상의 기계는 내 두뇌를 먹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의 나는 지금의 나일까? 당연하지만 식상한 질문이었다. 그 식상함이 너무 커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식당을 나와 집까지 걷는 동안 수윤은 자신의 두 발이 완전히 기계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인하기 위해 구두를 벗을 필요도 없었다. 이전의 구부정한 자세와 무기력한 동작은 사라졌다. 새 몸은 이전의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계 몸 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았다. 기계는 목을 타고 올라와 입과 턱을 먹어 가는 중이었다. 냉장고에서 망고 조각을 꺼내 입에 넣고 씹었다. 망고 맛이었지만, 그 맛이 전달되는 방식이 신기했다. 아주 미세한 점들이 입안에서 탁탁 튀는 듯한. 기계가 귀를 먹자, 조인나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앨범을 틀었다.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일 수도 있었다.

침실에서 화장 거울을 가져와 커피 테이블 위에 놓고 소파에 앉았다. 이제 수윤의 얼굴은 내부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투명한 플라스틱 막을 씌운 박물관의 로봇 머리처럼 보였다. 오로지 두 눈만이, 아마도 그 뒤에 있는 뇌만이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흰자위가 점점 투명해지는 게 보이자 눈을 감았다. 눈까풀이 천천히 투명해졌고 눈과 두개골 안쪽에서 차가운 불꽃들이 튀었다.

5분 뒤, 수윤은 눈을 뜨고 새로 만들어진 자신을 탐사했다.

듀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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