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 자산이나 블록체인 기술 얘기가 주변에서 들리기 시작한 때는 2015년이었어요. 자칭 사토시라는 이가 비트코인 프로그램 소스를 처음 배포한 게 2009년이니깐, 6년이 지나서죠. 많은 개발자에겐 익숙한 주제였지만, ‘잇(IT)문계’라 그런지 한발 늦었습니다. ‘누가 큰돈을 벌었다’는 류의 이야기입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라는 조미료까지 더해지면 감칠맛이 제대로죠. ‘신혼집 전셋값을 뽑았다더라’는 말에 귀가 쫑긋! 비록 이공학적 지식이 미천하지만, 유사 업계 종사자로서 관심 1비트 정도는 가질 수밖에 없었죠.
‘총량이 제한된 비트코인 거래는 수많은 사람의 장부에 분산 기록돼 원천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 여기까진 멋졌습니다. 하지만 금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머리가 복잡해졌죠. 화폐는 발권력을 가진 국가만이 발행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사토시는 동조자들을 모아 나라를 세우려는 걸까? 자산이라면 내재 가치가 있어야 할 텐데, 비트코인이 어떤 효용을 주나? 구동 원리가 너무 환상적이어서 공학적, 수학적 지식이 충만한 사람들은 기꺼이 값을 치르는 건가? 과문한 저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지갑을 열지 않았지요. 2017년, 아이시오(Initial Coin Offering·블록체인 기술 기반 새 코인을 만들기 위해 개발 자금을 모으는 과정)를 함께하자는 지인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기도 합니다. 많은 아이티 회사 재직자가 그런 제안을 받아보셨을 거예요.
‘코인’ 얘기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업계에서 일하거나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부류로 한정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찻잔 밖으로 뛰쳐나온 태풍이 되더라고요. 2017년 말이 되자 코인값이 ‘떡상’했다는 소리가 들렸어요. 몇 개월 만에 산속에 사는 ‘자연인’들도 블록체인이란 단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졌죠. 특별 편성된 방송을 통해 논객들이 갑론을박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론이었어요. ‘블록체인에 투자해 계층 이동을 하려는데, 정부가 규제 입장을 밝히며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주장 말입니다. 신기했습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던 아침, 앞자리 학생이 코인 거래소 앱을 켜놓고 쉴 새 없이 변하는 호가 창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눈길이 간 것도 이 무렵입니다.
2018년 중반 여러 코인의 시세가 ‘떡락’했고, ‘21세기판 네덜란드 튤립 파동’으로 결론 나나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을 기점으로 비트코인 시세가 로켓처럼 치솟기 전까지는 말이죠. 한 다리 건너 지인이 한 몫 건져 조기 은퇴를 설계한다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몇 년 전 나는 신앙이 부족했기에 구원의 동아줄을 잡지 못한 걸까? 현실에서 어떤 효익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희소성과 기술적 완결성만 갖추면 자산이 될 수 있는 건가?’ 궁금증이 돋았죠.
지정학적 강점인 ‘판교 레이더’를 돌려 한국어보다 코드가 더 편하다는 개발자들에게 귀동냥했습니다. 알고리즘 전문가 집단도 의견은 갈리더군요. 세상을 바꿀 혁신적 개념의 기술이라는 평가부터, 기술적 성취와 수많은 코인의 거래는 분리해 봐야 한다는 관점까지,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코인 가격이 24시간 오르내리는데, 수요와 공급 외에 딱 부러지는 배경 설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얘기가 가장 무섭게 들리더라고요. 혹자는 ‘판교’면 일상생활에서 코인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으냐고 묻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해예요. 거래 용도로 코인을 받는 상점이 드물고, 일부 온라인 결제에서 사용하긴 하지만, 하룻밤에 ‘떡상’과 ‘떡락’을 오가니 화폐 기능을 하긴 힘든 거죠.
이해하지 못하면 지르지 않는 소심파이기에, 1비트코인이 1억원까지 갈 거라는 얘기도, 폭락론자 얘기도, 더는 귀에 담지 않기로 했습니다. 피카소의 드로잉이 그려진 냅킨 한 조각이나 금융 공학 파생 상품도 투자처가 될 수 있기에, 블록체인의 섹시한 알고리즘에 ‘베팅’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다만, 끝까지 남는 의문들이 있어요. 왜 시간이 갈수록 기술적 진보 담론은 희미해져 가고, 가격 등락 얘기만 남는 걸까요? 지난 11년간 블록체인 기술은 우리 삶을 혁신했을까요?
‘코인’들이 효용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편해졌어요. ‘아, 너희는 희망과 믿음을 먹고 자라는 생물이구나’라고 말하면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화낼까요? 판교에서 컴퓨터 공학과 신앙의 앙상블을 느낍니다.
잇(IT)문계(판교 아이티회사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