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모임은 고사하고, 만나서 차 한잔 나눌 곳조차 마땅치 않은 시절이 길어진다. 미묘하게 쌓인 불안감, 뾰족하게 예민한 마음이 가가라앉지 않으니 말도 좀체 곱지 않다. 사소한 언행, 작은 실수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주변 사람들과 불화하는 날도 이어지고 있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집으로, 방으로, 전기장판을 켠 이불 속으로 숨어들다가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뭐하나’ 쓸데 없는 오지랖으로 에스엔에스만 연신 쳐다보다가 이불 밖으로 나와 드디어 씻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은 ‘동부이촌동’이라는 지명으로 더 유명하다. 빽빽한 주택들 사이사이에는 맛집도 많고 카페와 디저트 가게도 많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맛있는 동네’로 꼽힌다.
이름난 스시집이나 우동집, 디저트 가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목적지는 단 한 군데, 올 1월 초에 문을 연 ‘생선씨’였다. 이촌동 삼익상가 1층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생선씨의 정체는 식당도, 와인바도 아닌 ‘동네 생선가게’다. 비린내 나는 수산시장도 아니고, 호화로운 진열창을 앞세운 백화점 생선 코너도 아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 깔끔한 철제 프레임 속, 잘 손질한 생선회들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광어, 참치, 연어 같은 비교적 흔한 생선회는 물론이고 단새우, 성게, 제철 맞은 방어, 통영 삼배체 굴 같은 고급 해산물까지 고루 갖춰 놓았다. ‘아무래도 동네 생선가게라기엔 고급스럽다’란 생각은 가격을 보고 달라졌다. 주인이 발품 팔아 매일 노량진에서 수급하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만큼, 일식집에서 포장해 먹는 비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놀라웠다. ‘아귀 맑은탕’이나 ‘민물새우 대구탕’ 밀키트도 아이디어였다. 생선들을 직접 구워주는 서비스도 반가웠다. 홀린 듯 아귀 맑은 탕과 모둠 생선회를 들고 함께 판매하는 내추럴 와인 한 병도 땄다. 술과 안주와 식사를 한꺼번에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이상은 불안하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길고 긴 집순이 생활에도 한 줄기 빛이 생겼다. 궁하면 통하게 마련이고, 배달 음식도, 해먹는 요리도 지겨울 때쯤 이렇게 딱 좋은 생선가게가 등장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도 생선씨처럼 다양한 생선과 해산물을 파는 곳이 많으니 찾아가 볼 생각이다.
글∙사진 백문영(<럭셔리> 전 리빙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