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식물 정리에 들어갔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뭔가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당할 수 없으면서도 들여와 자기 공간을 채우는 사람, 쓰임새가 다한 줄 알지만 그것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에 도저히 ‘폐기’할 수가 없는 사람.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단어가 바로 ‘호더’(hoarder)다. 물론 이 단어에는 ‘병리적이고 집착적인 형태’라는 뜻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지금 사회는, 그 속의 우리 마음은 뭔가를 채우고 갖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하게 된다.
처음 몇 개의 식물로 시작했던 내 가드닝도 이제 발코니를 채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종류가 다양해서 식물 집사들 사이에 ‘제라 지옥’이라는 말로, 그 끝없는 매혹이 회자되는 제라늄은 여덟 포트, 큰 잎이 좋아 키우기 시작한 몬스테라는 세 종류, 잎을 잘라 번식한 것까지 하면 여섯 포트다. 그러면서도 나는 봄이 되면 화원에 들러 식구를 늘릴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계약 기간보다 먼저 나가기로 하고 새집을 구해야 했던 겨울의 날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로 하자. 새집을 계약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보러 가기로 한 집이 몇 시간 전, 혹은 10분 전에 계약돼 아예 내 차례가 오지도 않는 상황을 겪으며 점점 더 초조했다고만 말해둔다. 처음 우리는 이사 갈 집에는 지금처럼 발코니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실내는 온도가 일정하고 서큘레이터나 식물등이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굳이 발코니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훌륭한 거실이라도 발코니를 대신할 수 없고 아무리 양호한 발코니라도 ‘노지’보다 나을 수는 없었다. 발코니가 없다면 키울 수 없는 식물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산 아카시아종들이 그렇다.
가끔 들러 식물을 사는 종로 화원의 사장님은 최소한 발코니라도 있어야 오스트레일리아산 아카시아 같은 식물을 기를 수 있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온도 변화를 겪어야 힘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겨울이라는 난관을 거치지 않으면 아카시아는 뿌리가 제대로 발달할 수가 없고, 그렇다면 생명력을 보장할 수가 없다. 겨울이 되면 식물들을 다 실내로 들여 추위를 피하게 하려던 나는 가드닝에서 중요한 건, 그보다는 추위를 적절히 ‘경험’하게 해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때론 안락이 생장을 방해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마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금처럼 발코니는 있어야 했다.
그러나 새집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우리의 생각은 집을 보러 다니면서 점점 깨지기 시작했다. 전세 대란 속에서 그런 건 꿈이었고, 위치와 예산만 맞으면 얼른 붙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요즘 추세대로 발코니를 없애고 거실을 확장한 집을 계약했다. 그 매물을 잡기 위해 나는 원고를 쓰다 말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타고 다급하게 달려갔다. 중간 지점에서 만난 경북상회(같이 사는 사람의 별명이다)가 택시에서 내려 다가오는 날 보고는 “아니, 왜 이렇게 뛰어?” 하고 놀라서 물을 정도였다.
나는 식물들을 기를 자리가 지금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건 이 화분들을 다 데려갈 수는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마침 이사를 하는 가족이 있어 그 집으로 몇몇 식물을 분양하기로 했다. 그의 새집에는 다행히도 꽤 넓은 발코니가 있었다.
가족은 식물의 종은 상관없고 그저 사람보다 크지 않은 식물이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우리 집에는 그 정도 사이즈의 식물은 없지만 나는 그 얘기를 사람의 ‘앉은키’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대개 집에서 앉아서 생활하니까 만약 크기 면에서 식물에게 위압감을 느낀다면 그 정도 높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마침 몬스테라 가운데 물꽂이로 키워내 작고 본래 본성과 다르게 아직 여릿여릿한 것이 있어 보내기로 했다.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건 아이스톤 크로톤이었다. 경북상회가 마음에 들어 한 식물이라 그의 가족인 새 주인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변엽식물인 아이스톤 크로톤은 붉고 푸르고 노란빛의 다채로운 잎을 지녔다. 물감에 백지를 여러 번 담근 듯 색이 불규칙하게 번져 언제 봐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햇볕의 양이 적으면 녹색 잎이 나는데 빛을 더 쬐어주면 본래 색을 띠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은 뒤에도 결정은 하지 못했는데, 이 식물에 관한 기억들이 물살이 일 듯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양재에서 포트 식물로 사 와서 몇 달간 마음에 드는 흰색 화분을 찾아 분갈이해준 기억, 그 흰색 화분이 처음에 잘못 배송되어서 문의 글을 남겼더니 미안하다며 근사한 화병 하나를 덤으로 보내와 놀랐던 기억, 여름 동안 응애가 생겨서 스스로를 탓하며 씻기고 돌봤던 기억….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억이란 생활의 잔류물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나는 기억의 톤, 감정, 의미를 계속해서 환기하며 소설을 쓰고 현재의 실패감이나 곤란, 감당하기 힘든 현실적 문제들을 그 힘으로 이겨나가는 편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 기억 모두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혹시 어느 면에서는 그 역시 ‘호더적’ 패턴이 아닐까. 마침내 기억과 추억은 구분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물론 추억이 좀 더 주체적이고, 단순한 환기에서 더 나아간 의지적 행위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식물을 보내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사 소식을 전할 때마다 지인들은 대체로 식물은? 하고 물었다. 그렇게 질문해줄 때마다 나는 내 심적 갈등을 알아주는 듯해 고맙고 반가웠다. 식물 일부는 다른 집에 보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중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는 내 마음을 걱정했다.
“정을 준 네 마음이 너무 안 좋겠다.”
그때는 메신저로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는 정도로 표현하고 말았지만 나는 사실 콧날이 시큰할 정도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삿짐 견적을 위해 방문한 기사는 식물들을 둘러보더니 트럭을 따로 써야겠다고 말했다. 2.5t 탑차를 더 부를 정도는 아니고 화물칸이 개방되어 있는 1.5t 트럭을 써야 한다고.
“춥지 않을까요? 밖에서 대기하다가 식물들이 얼지 않을까요?”
나는 내심 어떤 친절, 완벽 보장 등의 답을 바랐지만 기사는 신중하고 나중 책임 문제 때문이라도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최대한 비닐로 싸서 옮기겠지만,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이사 당일이 아니라 일주일쯤 있다가 식물들이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내 눈앞에는 이사한 새집에서 누렇게 잎이 상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식물들이 그려졌다. 기사가 돌아간 뒤 우리는 아무리 성수기라도 이사비 견적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처음에는 요즘 물가가 비싼 것 같다, 이 지점이 좀 더 부르는 게 아닐까, 했지만 곧 인정했다. 이사 온 지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가 너무 많이 이 공간을 채워나갔음을.
요즘 밤이면 나는 발코니에 서서 화분들을 들여다보며 어떤 것을 보낼까 마음을 가늠해보고 있다. 기억이 있는가, 그건 힘써 떠올리고 여러 번 매만져보고 싶은 ‘추억’의 정도인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에는 목적이 있는가, 그 목적은 삶을 낫게 만드는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식물들을 건네받을 사람이 떠오르고 결국 그건 나에게서 출발해 타인이나 이 세상에 가닿는 질문들이 된다. 물론 마지막에는 나는 역시 생각이 너무나 많다, 생각 호더다, 호더, 하며 발코니나 한번 쓸고 들어올 뿐이지만 한동안 그 질문은 계속될 것 같다. 아마 이 겨울을 다 보내고 나서야 그 대답들을 조금이나마 알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렇게 보내는 마음이 어떤 상실에 가까웠는지 혹은 새로운 전환에 가까웠는지를 말이다.
김금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