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작가의 단편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는 화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 동창인 현수와 ‘나’가 오랜만에 만나 흙만 바꾸면 무엇이든 화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물이 빠지지 않아도 되는 흙만 있다면 구멍 없는 솥이나 냄비, 세숫대야, 심지어 만두도 ‘화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만두는 동그랗게 소를 감싸는 모양이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방도 거대한 화분일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이야기는 과거의 어느 시절 한 세대의 청춘들을 길러냈던 난곡의 방들에 관한 회상으로 흘러간다. 이사가 있었던 2월에 나는 문득문득 이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식물을 기르는 일이 어려운 건 작은 포트가 그 개체의 유일한 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지에서 자란다면 식물 스스로 노력해서 나쁜 생육 환경을 바꿔볼 수도 있다. 뿌리를 뻗고 뻗어 모자란 수분을 채울 수 있고 부족한 영양 역시 주변의 많은 요인들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 집에서 식물들은 내가 지정한 공간에서만 자랄 수 있다. 물을 많이 주는 날에는 썩을 수밖에 없고 너무 건조한 상태라도 내가 물을 주기 전에는 변화가 일지 않는다. 우리가 다 시든 식물들에 자책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나의 게으름과 무능력, 무관심을 증명하는 듯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아이를 기르는 부모 마음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식과 부모가 엄연한 타인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아이의 모든 상황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니 말이다.
이사하는 날, 기적처럼 날이 좋았다. 평생을 산 인천을 떠나 서울로 오겠다는 결심을 했던 이태 전의 이삿날에도 화창하게 맑아 엄마가 좋아했었는데 내가 날씨 운은 있구나 싶어 마음이 나아졌다. 더구나 내게는 이제 굳이 세어보지는 않지만 60개는 족히 넘는 식물들이 있으니까. 이사 전 유묘들이라도 따로 포장을 해두려고 했지만, 결국 그럴 시간이 없었다. 짐 정리는 물론이고 빨래도 다 못한 상황에서 이삿날을 맞아야 했으니까. 쓰지도 않으면서 받아둔 물건이나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를 창고의 박스들을 정리하는 데만도 허리가 나갈 지경이었다.
그런 이사 준비는 결국 내 생활을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당장의 불편을 견디지 못해 사들였던 각종 물건들이 끝도 없이 나왔고, 그건 불안과 걱정이 많은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쿠바로 여행 갔을 때 모기 퇴치제를 일곱통이나 가져갔던 일도 떠올랐다. 생필품을 구하기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 물건을 캐리어에 챙겼는지 여행에서 나는 ‘올○○○’이라는 드러그스토어 이름으로 불렸다. 그렇게 나의 낭비와 허영과 방만함을 탓하면서 물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다 며칠이 흘렀다. 물론 덕분에 이룬 성취도 있었다. 중고 거래에 성공한 것이었다. 운동을 위해 샀던 매트와 옷 정리 박스를 거래했다. 무료 나눔을 위해 스쿠터를 타고 40분 넘게 달려오는 이웃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나라는 사람이 살기 위해 과연 이렇게나 많은 물건들이 필요할까. 그런 자괴가 들 때면 발코니 식물들을 지켜봤다. 흙 속에 두 발을 조용히 묻은 채 식물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듯 화분도 많고 많은 종류가 있다. 흙, 플라스틱, 도자기, 시멘트, 세라믹 등. 처음 식물 집사가 되었을 때는 화분은 토분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보기에도 좋지만 분 자체가 숨을 쉬어 뿌리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토분에서 시작해 점점 더 근사하고 비싼 토분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급기야는 새벽부터 긴 줄을 서야 겨우 한정된 수량을 구할 수 있는 브랜드 토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토분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큰 식물들을 심기에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우리 집에는 선물로 들어온 ‘드라세나 수르쿨로사’가 있는데 1m 가까운 식물이 토분에 심겨 있다 보니 이동이 어렵다. 발코니에서 물 샤워 한번 시켜주면 내 속까지 시원해지겠는데 들 수가 없으니 늘 아쉽다. 반면 비슷한 크기의 자엽안개나무는 플라스틱 포트에 심겨 있어서 바깥 발코니까지 내놓고 바람과 비를 맞힐 수 있다.
요즘 내가 주로 쓰는 화분은 슬릿분이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기는 했지만 사방에 틈을 내어 바람이 잘 통하고, 뿌리가 화분 벽을 따라 엉켜 자라는 현상도 막아준다. 가격 또한 1~2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는 식물들이 제각각 다른 집을 짓고 산다. 좀 비좁기도 하고, 습하기도 하고, 색도 낡아 있지만 그런 차이들에 아랑곳없이 뿌리를 내리고 적응을 해낸다. 차이는 결함이 아니라 그저 조건일 뿐이라는 사실을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사 당일, 다행히 좋은 이사 업체를 만나 순조롭게 집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다 직원 한 분이 내게 혹시 글을 쓰는 작가냐고 물었다. 일단 여태껏 꺼내본 적 없는 컬러 박스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책이 많고, 이삿짐 액자에서 ‘작가님께’ 하는 호칭을 보았다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자녀분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학생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큰 상을 받기도 했다고. 침 한번 묻히는 날에는 난리가 날 정도로 책을 소중히 다루고 좋아한다고. 나는 그 말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들었다. 새 학기마다 책을 받아오면 아빠도 항상 포장지로 하나하나 싸주며 그걸 중히 여기는 마음에 대해 알려주었으니까. 아빠의 그런 모습을 배운 나도 책이 상하지 않게 조심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정작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부터. ‘꿈’이 ‘직업’이 된다는 건 어떤 마음들을 잃어버린다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보면 그건 내가 뿌리 내렸던 본래 지점들에 대한 실감이 옅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후가 되자 사다리차를 타고 화분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화분 정리를 맡은 직원분이 “아니, 식물이 계속 올라오네” 하며 당혹스러워했고 동료가 “정신 챙겨, 멘붕 오면 안 된다”고 농담했다. 나는 그 옆에서 “죄송해요, 그냥 거실에 두시면 제가 정리할게요”라고 했지만 직원은 가능한 한 화분대에 모두 챙겨 넣고야 일을 마쳤다.
이삿날이면 빠질 수 없는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하루를 마감하면서 나와 ‘경북상회’(가족의 별명이다)는 앞으로 아무것도 사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불필요한 물건들에 더 이상 내 공간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물건이 놓인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모두 내가 살아야 할 삶의 최대 스펙트럼이었으니까.
날이 따뜻했는데도 상한 식물들은 있었다. 베고니아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지친 식물들에게 물 한번씩 주는 데만도 이틀이 걸렸다. 요리를 할 수 있게 전기레인지가 가동되기까지는 일주일이 필요했고 들어갈 곳이 좁아 별도의 공사가 필요한 세탁기는 아직 설치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새집 생활에서 그래도 제라늄과 브룬펠시아는 꽃을 보여주었다. 나와 식물들에게 마련된 이 생활, 새로운 삶이라는 이 거대한 화분은 어떤 내일을 펼쳐 보여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어쩐지 마음이 애틋하게 젖어 들어갔는데 실제로 보낼 당장의 하루하루야 어떻든 후에는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의 ‘나’가 서로에 대한 ‘열정적’ 오해 속에 결국 떠나 보내버린 사람들에 대해 떠올리며 얘기하듯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까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지금은 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기다려온 봄이 아닌가. 훗날 이 시절을 온전히 이해할 때 숱한 착오들 속에서도 이 봄의 기운과 식물들만은 선명할 거였다.
김금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