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있는 ‘필동면옥’ 냉면. 사진 백문영 제공
혼자 먹어도 어색하지 않고, 비교적 시간제한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웬만하면 쉬는 시간 없고, 1인분을 주문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식당, 무엇보다도 소주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필동면옥’을 만났다. 지하철 충무로역 바로 앞, 대한극장을 지나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 마주친 이곳의 첫인상은 여타 평양냉면집과 비슷했다. 넓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과 낡은 난로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는 할머니 댁에 방문한 듯 정겹고 포근했다.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육수 한 모금을 머금은 채 마시는 소주는 특별했다. 잘게 썬 파의 아릿한 향, 고춧가루의 알싸한 맛도 다채로웠다. 투박하지만 적당히 찰기 있는 면을 씹어 삼키다 육수를 마시고, 차가운 소주를 넘긴 뒤 뜨끈한 면수로 마무리하는 일은 거의 완결된 코스다.
냉면 하면 빠질 수 없는 동네가 또 있다. 중구 오장동에는 함흥냉면 전문점이 삼삼오오 몰려 있다. 평양냉면이 슴슴하고 자극이 없는 맛이라면, 대척점에 있는 함흥냉면은 쫀득하고 매콤하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쫄깃한 면에 빨갛고 자극적인 양념이 잔뜩 올라가 있다. 명태회무침이 올라간 함흥냉면은 언뜻 자극적으로 보인다. 오장동에는 여러 함흥냉면 집이 있지만, 늘 발길은 ‘오장동흥남집’으로 향한다.
회 냉면을 주문하고 육향 가득한 육수를 마신다. 감칠맛 나는 육수 한 주전자면 소주 한병도 거뜬하다. 주로 명태회지만, 때때로 가오리나 코다리회무침이 고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설탕 한 스푼 뿌리고, 참기름 한 바퀴 돌린 뒤 가위로 잘게 잘라 한입 가득 냉면을 입에 넣고 소주와 육수로 입가심하면 “앉은 자리에서 소주 열병은 먹겠다”는 소리가 분별없이 나온다.
분식점의 소박한 냉면부터 시장통의 매운 냉면과 고깃집의 후식 냉면까지 한국인의 냉면 사랑은 지극하다. 어떤 종류라도 지금이 먹기 딱 좋은 시기다. 입춘이 지나도 날씨는 여전히 차갑다. 내게 지금 제철음식은 냉면이다.
백문영(전 <럭셔리> 리빙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