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에 대한 칼럼이 나간 후 많은 독자님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은유’ 이야기를 드렸더니 시 쓰기에 관한 글로 짐작하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는 않다. 스토리텔링도 방법은 같다.
스토리텔링의 비결은 한줄 요약을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식상할지, 참신할지는 그 한줄만 봐도 안다. ‘시냇가의 청개구리’는 평범하고 그저 그런데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그럴싸하다. ‘미국의 미국 사람’은 평범한데 ‘파리의 아메리카인’은 솔깃하다. ‘콜센터에 걸려온 전화’는 일상이지만,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는 눈에 띈다. ‘회사로 출근한 사나이’는 답답한데 ‘유치원으로 출근한 사나이’는 회가 동한다. 영화 <유치원에 간 사나이>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잠복근무하게 된 근육마초 강력반 형사의 이야기’였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난감해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눈치를 채셨겠지만 뒤엣것들은 소설이나 영화로 성공을 거둔 작품들의 제목이다. 개구리도, 미국인도, 전화도 그대로다. 그런데도 앞엣것보다 흥미롭다. 사람이나 사물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웹 영의 말처럼 “아이디어란 오래된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다. 예를 들어 ‘물’과 ‘물고기’는 새로운 조합이 아니다. 늘 함께 붙어있는 요소들을 다시 연결해본들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 반면 ‘사막의 물고기’나 ‘하늘의 물고기’처럼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붙여놓으면 좀 낫다. “‘물속의 물고기’는 관심받지 못하지만 ‘물 밖의 물고기’라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수많은 시나리오 작법서에 수없이 되풀이되는 내용이다.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이리저리 조합하는 실험이라니, 컴퓨터를 이용하면 어떨까. 그래서 만들어봤다. 스토리텔링을 돕는 기계다.
QR코드와 링크(바로보기)로 접속해보시길.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에 세번 이상 나오는 단어 220여개를 추렸다. 컴퓨터가 장소와 인물을 무작위로 조합해 한줄짜리 스토리를 뽑아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켜봤다. ‘버스에서 마주친 청년’이나 ‘앞자리에 간 꼬마’같은 조합은 자주 보던 것이라 밋밋하다. ‘물속의 물고기’ 같다. 아무래도 재미있는 쪽은 ‘물 밖의 물고기’다. ‘시집에 간 친정아버지’는 흥미롭다. 친정아버지가 시댁에는 왜 왔을까. ‘보리밭에 숨은 시아버지’ 역시 호기심이 동한다. 아들과 며느리 몰래 무슨 일을 하다가 달아나지도 못한 채 보리밭에 숨었을까.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가보기로 했다. ‘좀비’니, ‘실리콘밸리’니 어떻게 봐도 채만식 소설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 수십개를 추가해봤다. 예상대로다. ‘마계에 환생한 광대’라거나 ‘우주정거장에서 행방불명된 공자’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취향을 탈 것 같다. 나는 재미있지만 억지스럽다는 반응도 나올 수 있겠다. 그래도 눈길은 끈다.
소개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 ‘모르도르에서 행방불명된 부인’이 나오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모르도르에서 다시 만난 남편’이 나왔다. 흥미로운 우연이다. 모르도르는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어둠의 땅. 둘이 재회하면 부부싸움을 할까? 언성이 높아져 오크 같은 괴물한테 들키면 어쩌지? 부부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호기심이 곧 영감이다. 물음에 하나하나 답하다 보면 어느덧 이야기가 완성될 테니 말이다.
김태권(만화가)